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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도시


고대 도시는 문명의 발생기부터 고대 사회가 종식되는 시기까지의 기간 동안 청동기 기술, 농업 생산력의 증대, 정교한 사회적 분업 및 권력 집착형 행정 체계의 등장을 배경으로 건설된 거주지를 의미한다.

고대 도시
고대 도시는 문명의 발생기부터 고대 사회가 종식되는 시기까지의 기간 동안 청동기 기술, 농업 생산력의 증대, 정교한 사회적 분업 및 권력 집착형 행정 체계의 등장을 배경으로 건설된 거주지를 의미한다.
Benh LIEU SONG ( Flickr ) · CC BY-SA 2.0 · Tokyo Shibuya Scramble Crossing 2018-10-09.jpg
고대 도시는 문명의 발생기부터 고대 사회가 종식되는 시기까지의 기간 동안 청동기 기술, 농업 생산력의 증대, 정교한 사회적 분업 및 권력 집착형 행정 체계의 등장을 배경으로 건설된 거주지를 의미한다.
1. 개요
인류 역사에서 고대 도시는 단순한 집단 거주지를 넘어 문명 발전의 핵심적 이정표로 기능했다. 신석기 혁명 이후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surplus(전통적인 농업 생산의 서플러스, 즉 여유 생산물)가 발생함에 따라, 사회는 계급화되고 전문 직업군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공간적으로 집약된 결과물이 바로 고대 도시이다.
대부분의 고대 도시는 거대한 하천 유역을 끼고 발생했으며, 이는 용수 확보와 농업용 용수 공급, 그리고 수운을 통한 물자 이동에 절대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시작으로 이집트의 나일강, 인도 대륙의 인더스강, 중국의 황하 유역 등에서 형성된 초기 도시들은 인류가 환경을 극복하고 거대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이다.
도시의 형성은 문자 발명과도 궤를 같이한다. 복잡해진 경제 활동과 조세 수탈, 행정 관리를 위해 기록 체계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 도시는 정치, 경제, 종교, 문화의 중심지이자 고대 국가 그 자체이기도 했다.
2. 특징 및 구조
고대 도시의 물리적 형태는 종교적 숭배 대상과 통치자의 권력을 시각적으로 기호화하는 데 집중되었다. 도시 중심부에는 언제나 거대한 신전이나 궁전이 위치했으며, 이는 도시 전체를 압도하는 위용을 자랑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나 이집트의 신전 건축물들이 대표적이다.
방어 능력 또한 고대 도시의 핵심적 요소였다. 외부 부족이나 타 국가의 침략으로부터 자원과 인구를 보호하기 위해 견고한 성벽을 구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성벽 내부는 통치 계급과 사제, 상인 및 공인들이 거주하는 중심 구역과 일반 평민들이 살아가는 거주 구역으로 엄격히 분리되는 경향을 보였다.
도시 계획의 측면에서는 격자형 도로 망과 배수 시설의 도입이 눈에 띈다.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와 하라파는 이미 기원전 2500년경에 완벽에 가까운 격자형 도시 계획과 복잡한 하수도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1]https://www.britannica.com/place/Mohenjo-daro —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유적은 도로망이 정교하게 직각으로 교차하는 그리드 패턴으로 설계되었으며, 집마다 연결된 고도의 하수 시설을 구축했던 대표적인 고대 계획도시였다. 이러한 하이테크적 요소는 도시 내 위생 관리와 인구 밀집으로 인한 전염병 예방에 크게 기여했다.
3. 주요 고대 도시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우르와 바빌론은 인류 최초의 도시들로 꼽힌다. 특히 바빌론은 중앙집권적 법전과 정교한 지구라트 구조물로 유명하며, 당시 전 세계의 물산이 집중되는 국제적인 대도시로 기능했다.
이집트의 멤피스와 테베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로, 왕권과 신권이 결합된 거대한 행정 중심지였다. 이들 도시는 사후 세계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바탕으로 건설된 대규모 능묘군과 연계되어 독특한 도시 경관을 형성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상나라의 은허나 주나라의 낙읍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도시는 철저한 종법 제도로 설계되었으며, 봉건적 지배 질서를 반영하는 사직과 궁전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그리스 아테네와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는 서양 고대 도시의 정점을 보여준다. 아테네는 아크로폴리스라는 종교적/방어적 중심지와 아고라라는 공적 시빌 소통 공간을 결합한 폴리스 형태를 확립했다. 로마는 수직증축된 공동주택인 인술라, 거대 목욕탕, 전차 경기장, 그리고 정교한 수도교 시스템을 갖춘 밀도 높은 메가시티의 시초였다.[2]https://www.britannica.com/technology/insula — 고대 로마의 인술라는 목재와 보드라크 등으로 지어진 고층 집합주택으로, 상층부로 갈수록 화재와 붕괴 위험이 높아 임대료가 낮아지는 구조적 특징을 보였다.
4. 역사적 의의와 소멸
고대 도시는 인류가 자연 상태를 벗어나 복잡한 제도적 체계를 구축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다. 도시는 기술 혁신과 사성의 교류가 일어나는 용광로였으며, 오늘날 현대 도시가 지닌 기본적인 요소들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러나 많은 고대 도시들은 환경 파괴, 기후 변화, 과도한 인구 집중, 그리고 제국의 쇠퇴와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나친 토양 염류화로 농업 기반이 무너진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들이나, 제국의 붕괴와 함께 인구가 급감하며 도시 기능이 마비된 로마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고대 도시가 남긴 물리적 유적과 문화적 유산은 현대 인류 문명의 뿌리를 이루고 있으며, 고고학과 역사학의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서 여전히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다.


5. 여담
5.1 고대 로마의 인구 밀도와 부동산 바가지
흔히 고대 로마 하면 거대한 신전과 넓은 광장을 떠올리지만, 일반 서민들이 살던 주거지인 '인출라(Insula)'의 주거 환경은 현대의 닭장 같은 고시원이나 슬럼가를 방불케 했다. 당시 로마 시내의 인구 밀도는 1㎢당 약 6만 명에 육박하여 현대의 뭄바이나 마닐라 같은 극악의 인구 밀도를 자랑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집세가 터무니없이 비쌌는데, 건물의 위층으로 갈수록 화재나 붕괴 시 탈출이 불가능해 월세가 싸지는 기괴한 구조였다. 실제로 건물이 무너져 세입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비일비재했음에도 건물주들은 나무와 짚으로 덧대어 층수를 올리는 불법 증축을 멈추지 않았다.
5.2 모헨조다로의 지하 하수도와 고대인들의 청결 집착
기원전 2500년경 인두스 문명의 대표 도시인 모헨조다로는 현대의 계획도시조차 울고 갈 수준의 완벽한 배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모든 가구에는 벽돌로 만든 개인 욕실과 변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오수는 벽 속의 관을 타고 도로 밑에 숨겨진 대형 하수도로 흘러들어갔다.[3]모헨조다로 유적에서 발견된 가구별 욕실과 하수관은 토기 관을 타고 도로의 주 하수구로 배출되도록 정밀하게 설계되어 고대 인류의 뛰어난 위생 관념을 보여준다. 이 하수관에는 정기적으로 오물을 제거할 수 있는 점검구(맨홀)까지 존재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완벽한 위생 시스템이 왕이나 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대형 궁전이나 신전이 아니라, 오직 '시민들의 청결'을 위해 도시 전체에 균일하게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5.3 폼페이의 고대 도로 이정표와 그라피티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동결된 폼페이의 거리는 고대인들의 날것 그대로의 삶을 보여준다. 도시 도로의 돌바닥에는 밤길에도 빛을 반사하는 흰색 대리석 조각이 박혀 있어 일종의 '야간 도로 반사판' 역할을 했다. 또한, 사창가로 향하는 길목의 돌바닥에는 남성의 성기 모양이 조각되어 있어 글을 모르는 외국인 상인들도 쉽게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고대판 길안내 픽토그램'으로 쓰였다. 도시 벽면에는 "아쿠티아, 너의 매력에 내 마음이 녹는다", "여기서 빵을 산 놈은 바보다" 같은 지극히 현대적인 낙서(그라피티)가 가득하다.
5.4 바빌론의 청동 문과 사기꾼 상인 파피루스
세계 7대 기적 중 하나인 '하늘정원'으로 유명한 바빌론은 당시 방어선 구축에 광적으로 집착했던 도시다. 도시를 둘러싼 외벽의 두께만 8m에 달해 전차가 벽 위에서 유턴을 할 수 있을 정도였으며, 도시로 들어오는 8개의 대문은 모두 청동으로 주조되어 햇빛을 받으면 도시 전체가 금빛으로 빛났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 거대 무역 도시의 유적에서는 "당신이 보낸 구리의 품질이 쓰레기 같다"며 상인에게 따지는 고객의 불만사항이 적힌 점토판(우르의 나니가 보낸 점토판)이 발견되어, 고대나 지금이나 중고 거래 및 원자재 사기는 존재했음이 증명되었다.[4]https://www.britishmuseum.org/collection/object/W_1953-0411-71 — 영국박물관에 소장된 '에아나시르에게 보내는 나니의 점토판'은 기원전 1750년경 우르에서 작성된 것으로, 품질이 낮은 구리를 납품한 상인에게 고객이 강하게 항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5.5 테오티우아칸의 거대한 무명(無名) 도시
메소아메리카 최고의 고대 도시인 테오티우아칸은 최대 15만 명 이상이 거주했던 초대형 거대 도시였으나, 정작 이 도시를 누가 만들었고 실제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테오티우아칸(신들의 탄생지)'이라는 이름조차 이 도시가 버려진 지 수백 년 뒤, 폐허를 발견한 아즈텍인들이 웅장함에 압도되어 붙인 후대의 별칭이다.[5]테오티우아칸은 멕시코 계곡에 위치했던 대도시로, 14세기 아즈텍인들이 폐허를 발견하고 '신들의 도시'라는 의미의 이름인 테오티우아칸을 붙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정도로 고도화된 계획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통치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대형 왕족 무덤이나 개별 영웅을 찬양하는 문자 기록이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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