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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 시대


대항해 시대(Age of Discovery)는 15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배들이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무역로를 찾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전 세계 바다를 누볐던 역사적 거대 이벤트이자 세계사의 결정적 전환점이다.

대항해 시대
대항해 시대(Age of Discovery)는 15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배들이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무역로를 찾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전 세계 바다를 누볐던 역사적 거대 이벤트이자 세계사의 결정적 전환점이다.
Anonymous · Public domain · Vasco Da Gama.jpg
대항해 시대(Age of Discovery)는 15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배들이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무역로를 찾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전 세계 바다를 누볐던 역사적 거대 이벤트이자 세계사의 결정적 전환점이다.
1. 유럽의 해양 탐험 시대
중세 유럽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던 유럽 문명이 기술 발전과 욕망에 힘입어 밖으로 뻗어나간 시기로, 좋게 말하면 서구의 세계 진출이고 나쁘게 말하면 전 지구적 침략과 수탈의 서막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지구상의 독립된 문명들이 하나로 얽히기 시작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가 성립되었다.
1.1 배경: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유럽인들이 목숨을 걸고 돛을 올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향신료, 그중에서도 후추 때문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후추는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고기의 보존제이자 부의 상징이었는데,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육상 실크로드를 턱 막아서버리는 바람에 중동 상인들의 미친 듯한 폭리와 관세 폭탄을 감당해야 했다. 결국 유럽인들은 "중동을 거치지 않고 인도에 직접 갈 수 있는 바닷길을 뚫자"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에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나침반, 천문학, 지리학 지식이 급격히 발전했고, 원해 항해가 가능한 카라벨(Caravel) 선박 같은 먼바다용 배들이 등장하면서 기술적 기반이 완성되었다. 또한 카톨릭 교회가 이슬람 세력을 교화하고 전 세계에 세력을 확장하겠다는 종교적 광기 혹은 열정이 결합하면서 대항해 시대의 폭주가 시작되었다.
1.2 경과: 맹렬했던 해양 탐험의 기록
대항해 시대의 스타트를 끊은 것은 피레네반도의 변방국이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카스티야 왕국)이었다. 포르투갈의 엔리케 항해왕자는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전략을 취했고, 마침내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돌파한 데 이어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칼리컷에 도달하며 대망의 인도 항로를 개척해 냈다.[2]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Vasco-da-Gama — 바스코 다 가마는 칼리컷 국왕에게 선물로 설탕, 기름, 모자 등을 내놓았으나 고작 이런 것을 선물로 가져왔느냐며 비웃음과 문박을 당했다.
이에 질세라 스페인은 이탈리아 출신 모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지구는 둥그니까 서쪽으로 가면 인도가 나온다"는 제안을 덥석 물었다. 콜럼버스는 인도가 아닌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했지만 죽을 때까지 자기가 인도에 왔다고 믿었고, 이후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이곳이 신대륙임이 밝혀졌다.[1]https://www.loc.gov/resource/g3200.ct000725 — 콜럼버스는 자신이 도착한 곳이 동아시아의 일부라고 끝까지 주장했으나, 지도 제작자 마르틴 발트제뮐러가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세계 지도에 처음 표기했다. 결정타로 페르디난드 마젤란 선단이 사상 최초로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세계 주항에 성공하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16세기 후반부터는 후발주자인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가 이 판에 뛰어들었다. 네덜란드와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여 국가 차원의 대규모 주식회사 형태로 해상 패권을 다퉜으며, 북미 대륙 탐험과 오세아니아 발견으로 이어지며 지구상의 거의 모든 해로가 열리게 되었다.
1.3 여파 및 영향: 세계의 재편과 씁쓸한 유산
대항해 시대가 가져온 파장은 그야말로 지구급이었다. 유럽에는 감자, 고구마, 옥수수, 담배, 토마토 같은 아메리카의 작물들이 들어와 식량 난을 해결하고 인구 폭발의 계기가 되었으며, 반대로 아메리카에는 소, 말, 밀과 함께 두창(마마)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이 유입되어 신대륙 주민의 90% 이상이 몰살당하는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다.
또한, 신대륙에서 쏟아져 들어온 막대한 양의 은은 유럽 경제에 인플레이션을 일으켰으며, 부족해진 신대륙의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아프리카 흑인들을 납치해 노예로 팔아넘기는 비인간적인 삼각 무역이 판을 치게 되었다. 아메리카의 고대 문명인 아스테카와 인카는 스페인의 정복자(콘키스타도르)들에 의해 흔적도 없이 짓밟혔다.
결론적으로 대항해 시대는 유럽이 자본을 축적하고 훗날 세계를 제패하게 되는 산업 혁명의 기초를 마련한 시기였으나, 비유럽권 세계에는 colonialization(식민지화)과 수탈, 인종차별의 상처를 남긴 양날의 검과 같은 시대였다.
2. 코에이의 비디오 게임 시리즈
대항해시대(Age of Discovery)는 15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유럽인들이 비단길과 기존 아시아 무역로의 대안을 찾고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기 위해 해양으로 진출하며 전 지구적 교류와 격변을 일으킨 역사적 시기를 의미한다.
2.1 개요
인류 역사상 세계의 직조 방식 자체가 완전히 뒤바뀐 압도적인 변곡점이자, 구대륙과 신대륙이 물리적으로 이어지며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가 시작된 시대이다. 서유럽의 변방에 불과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시발점이 되었으며, 이후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이 참전하면서 글로벌 쟁탈전으로 번졌다. 단순히 바다를 건너 땅을 발견한 것을 넘어, 향신료를 향한 유럽인들의 집착이 초래한 광기이자 지구 반대편 문명들에게는 재앙의 시작이기도 했다. 오늘날 글로벌화의 기원이자 자본주의의 기초가 형성된 시기이지만, 그 이면에는 무자비한 수탈과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깔려 있다.
2.2 시대적 배경 및 원인
이 시기가 도래한 가장 직관적인 원인은 오스만 제국에 의한 기존 무역로의 차단이었다. 동방의 향신료와 비단, 도자기는 유럽 귀족층의 필수품이었으나, 동로마 제국 붕괴 이후 오스만 제국이 육상 및 중동 무역로를 독점하고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자 유럽인들은 직접 바다를 타고 아시아로 가는 길을 뚫어야만 했다.
기술적인 발전도 시의적절하게 맞물렸다. 아랍으로부터 유입된 나침반과 천문 관측 기구인 아스트롤라베의 보급, 삼각 돛을 도입해 역풍을 받아치며 항해할 수 있는 카라벨선의 발명은 먼바다로 나갈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여기에 지구형체설의 확산과 지도 제작 술의 발전, 그리고 "이교도를 도살하고 기독교를 전파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겠다"는 종교적 광신과 "동방의 금과 향신료를 독점해 벼락부자가 되겠다"는 세속적 탐욕이 결합하면서 위험천만한 항해에 목숨을 거는 탐험가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
2.3 주요 경과 및 탐험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가 아프리카 서안 탐사를 후원하며 선구자로 나섰다. 포르투갈 항해사들은 서차서차 아프리카 대륙을 타고 내려갔고, 마침내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에 도달했으며,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칼리컷에 도달하면서 동방 항로를 열어젖혔다.
이에 자극받은 스페인은 이탈리아 출신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후원하여 지구는 둥그니 서쪽으로 가면 인도가 나올 것이라는 계산하에 서진을 시도했다. 그 결과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였으나,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그곳을 인도라고 믿었다. 이후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이 대륙이 아시아가 아닌 새로운 대륙임이 밝혀졌다.
스페인의 후원을 받은 페르디난드 마젤란 선단은 남미 대륙을 돌아서 태평양을 건너는 초유의 시도를 통해 최초로 세계 순항 기록을 세우며 지구 전체의 개략적인 지형을 완성했다. 이로써 유럽 국가들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통해 지도를 반으로 갈라 세계를 나누어 먹는 무시무시한 패권 다툼을 시작했다.[3]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중재로 맺어진 이 조약 때문에 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쓰고 나머지 남미 국가들은 스페인어를 쓰게 되었다.
2.4 역사적 영향과 결과
이 시기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의 생태계와 문화가 교가된 현상을 '콜럼버스 교환'이라고 부른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토마토, 담배 등이 구대륙으로 건너가 유럽과 아시아의 인구 폭발을 견인했고, 반대로 구대륙의 말, 소, 돼지, 그리고 천연두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이 신대륙으로 유입되었다. 면역력이 없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전염병과 스페인 정복자(콘키스타도르)들의 학살로 인해 인구의 절대 다수가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포토시 은광 등에서 쏟아져 나온 막대한 양의 은은 유럽으로 유입되어 엄청난 인플레이션인 '가격 혁명'을 일으켰고, 이 은은 다시 청나라 등으로 흘러 들어가 전 세계적 통화망을 형성했다. 또한 부족해진 신대륙의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수천만 명의 흑인들을 납치해 유통하는 참혹한 '대서양 노예 무역'이 전면화되었다.
결과적으로 대항해시대는 서유럽이 세계 패권을 쥐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으나, 비유럽권 지역에게는 식민지화와 수탈, 문화적 말살이라는 잔혹한 결과를 남겼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세계화된 문명의 기초이자, 서구 중심적 세계 질서의 원형이 이 시대에 모두 완성되었다.


3. 여담
3.1 선원들의 영양실도와괴혈병, 그리고 양배추 절임
당시 해원(海員)들의 생존율을 위협한 최대의 적은 해적이 아닌 괴혈병이었다. 장기 항해 시 신선한 채소와 과일 섭취가 불가능해지면서 비타민 C 결핍으로 잇몸이 부풀어 오르고 치아가 빠지며 급기야 사망에 이르는 비극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났다.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 당시에도 선원의 60% 이상이 괴혈병으로 목숨을 잃었을 정도.
이 잔혹한 질병의 해결책을 찾아낸 인물이 바로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었다. 그는 항해 중 선원들에게 독일식 양배추 절임인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를 강제로 먹였다. 초기에는 선원들이 기괴한 냄새가 난다며 거부했으나, 장교들에게만 특식으로 제공하는 역발상 마케팅을 펼쳐 선원들의 질투심을 유발, 섭취를 유도했다는 후문.[4]쿡 선장은 귀한 음식처럼 보이게 만들어 선원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는심리전을 활용했다. 결과적으로 쿡 선장의 배에서는 단 한 명의 괴혈병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3.2 향신료 육두구와 맨해튼 섬의 교환
당시 정향, 육두구(Nutmeg) 같은 향신료의 가치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높았다. 특히 육두구는 흑사병의 치료제라는 소문까지 돌면서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폭리 수준의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이 과정에서 향신료의 주산지였던 인도네시아 룬(Run) 섬을 두고 영국과 네덜란드 간에 치열한 분쟁이 발생했다. 결국 1667년 브레다 조약을 통해 네덜란드는 영국에 북아메리카의 작은 섬 하나를 넘겨주는 대신 룬 섬의 독점권을 챙겼다. 이때 네덜란드가 영국에 넘겨준 보잘것없는 땅이 바로 현재 미국 뉴욕의 중심지인 맨해튼이다.[5]당시 네덜란드는 향신료 독점권에 눈이 멀어 뉴암스테르담이라 불리던 숲과 갯벌 형태의 맨해튼 섬을 영국의 룬 섬과 흔쾌히 교환했다. 당시에는 네덜란드가 엄청난 이득을 본 거래로 평가받았으나, 역사에 만약은 없다.
3.3 괴물과 세계의 끝에 대한 해양 공포증
당시 지도 제작 기술의 한계와 해양 생물에 대한 무지는 극심한 해양 공포증을 낳았다. 지도 제작자들은 탐험되지 않은 바다 영역에 "이곳에 용이 있다(Hic sunt dracones)"라는 문구를 남기거나, 배를 씹어 삼키는 대형 바다괴물(크라켄 등)을 그렸다.[6]1504년에 제작된 렌녹스 지구의(Lenox Globe)에는 실제로 동남아시아 해역 부근에 'HIC SVNT DRACONES'라는 문구가刻인되어 있다.
또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수많은 선원들은 "배가 바다의 끝(절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콜럼버스를 비롯한 선장들은 항해 중 선원들의 집단 반란(Mutiny) 위협을 상시적으로 달고 살아야 했으며, 실제로 거짓 항해 기록을 작성하여 선원들을 안심시키는 일도 흔했다.
3.4 스페인 무적함대를 수장시킨 은(銀)과 인플레이션
신대륙에서 유입된 천문학적인 양의 금과 은은 유럽 경제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특히 스페인은 포토시 은광 등에서 수탈한 은을 본국으로 쉴 새 없이 실어 나랐다.
그러나 이는 역사상 유례없는 대통화팽창, 즉 '16세기 가격 혁명(Price Revolution)'을 야기했다. 돈의 가치가 폭락하고 물가가 수배로 뛰어오르면서 정작 스페인 국내 제조업은 파산하였고, 수탈한 은은 전쟁 비용과 채무 변제를 위해 타국으로 유출되었다.[7]막대한 은 유입으로 스페인의 물가가 3~4배 이상 폭등하면서 스페인 자국 물품의 가격 경쟁력이 상실되어 경제가 오히려 붕괴했다. 결과적으로 신대륙의 은은 스페인 제국을 부유하게 만들기는커녕 몰락을 가속화하는 독약이 되고 말았다.
3.5 신대륙과의 바이오 테러급 생태계 교환
유럽인의 신대륙 진출은 단순히 인종의 이동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생태계의 대혼란을 가져왔다. 이를 '콜럼버스 교환(Columbian Exchange)'이라 부른다. 유럽에서는 감자, 고구마, 옥수수, 토마토, 담배 등이 건너와 유럽의 기근을 해결하고 인구 부양력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반면 신대륙으로 넘어간 것은 천연두, 홍역, 독감 등의 전염병이었다. 항체가 전혀 없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칼과 총에 맞아 죽은 수보다 유럽인이 가져온 바이러스에 의해 사멸한 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학계에서는 신대륙 발견 이후 단 수십 년 만에 원주민 인구의 80~90%가 감염병으로 증발한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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