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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프라이데이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는 매년 11월 네 번째 목요일인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다음 날을 가리키는 말로, 연중 가장 큰 규모의 할인 판매가 이루어지는 미국의 대표적인 쇼핑 시즌이다.

블랙 프라이데이

블랙 프라이데이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는 매년 11월 네 번째 목요일인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다음 날을 가리키는 말로, 연중 가장 큰 규모의 할인 판매가 이루어지는 미국의 대표적인 쇼핑 시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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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는 매년 11월 네 번째 목요일인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다음 날을 가리키는 말로, 연중 가장 큰 규모의 할인 판매가 이루어지는 미국의 대표적인 쇼핑 시즌이다.

1. 미국의 대규모 쇼핑 행사

연말 쇼핑 대목의 시작을 알리는 시점이자 미국 유통업계의 최대 대목으로 꼽히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미국 소비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1.1 개요

미국에서 시작된 대규모 정기 할인 행사로, 추수감사절 연휴와 맞물려 전국적인 소비 열풍이 일어나는 날이다. 전통적으로 오프라인 매장들이 새벽부터 문을 열고 파격적인 할인 상품을 판매하여 소비자들이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서는 장관이 연출된다. 최근에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대대적인 할인을 진행하며, 전 세계의 소비자들이 직구를 통해 참여하는 글로벌 쇼핑 축제로 확장되었다.

1.2 어원 및 유래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명칭의 유래에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설은 장부상의 변화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상인들이 일 년 내내 적자(Red ink) 상태로 유지되던 장부를 이날을 기점으로 많은 판매량을 통해 흑자(Black ink)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블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해석이다.[1]상업적 흑자 전환설은 1980년대 후반 유통업계가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만들어낸 민간어원설에 가깝다.

다른 하나는 1960년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추수감사절 다음 날 쇼핑객과 관광객이 도로로 대거 몰려들어 극심한 교통체증과 혼란이 발생하자, 현지 경찰들이 이날을 달갑지 않게 여겨 '검은 금요일'이라고 부른 데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초기의 부정적인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상인들의 대규모 이익과 연결되어 긍정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하였다.

1.3 특징 및 소비 경향

이 기간의 할인율은 평소와 차원이 다른 수준을 자랑한다. 이월 상품은 물론 최신 가전제품, 의류, 잡화 등 다양한 품목이 최소 수십 퍼센트에서 크게는 80~90%까지 할인된 가격에 판매된다. 특히 텔레비전, 노트북, 게임기 등 고가의 가전제품이나 IT 기기가 주요 인기 품목으로 꼽힌다.

쇼핑의 형태는 유통 환경의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도어버스터(Doorbuster)'라 불리는 초특가 한정 상품을 선점하기 위해 밤을 새워 매장 앞에 캠핑을 하거나 문이 열리자마자 매장 안으로 내달리는 폭력적인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2]'문(Door)을 부수고 들어가는 사람(Buster)'이라는 뜻으로,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인파가 몰려드는 모습에서 유래한 용어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마존을 필두로 한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매장 방문보다는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을 통한 구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1.4 파생 행사 및 세계적 영향

블랙 프라이데이의 대성공은 다양한 파생 행사를 낳았다. 블랙 프라이데이 직후 찾아오는 첫 번째 월요일은 온라인 쇼핑몰 위주의 할인이 진행되는 '사이버 먼데이(Cyber Monday)'로 지정되어 있으며,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및 새해로 이어지는 전체 기간을 '홀리데이 쇼핑 시즌'이라 부른다.

또한, 이 문화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의 소비자들이 해외 직구를 통해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한국의 '코리아 세일 페스타' 등 각국 유통업계도 유사한 시기에 자체적인 대규모 할인 행사를 기획하여 진행하는 추세다.

2. 1869년 미국 금시장 공황

1869년 9월 24일 금요일, 미국의 금융 투기꾼 제이 굴드와 짐 피스크가 금시장을 독점하려 시도함에 따라 미국 금융 시장이 붕괴하고 극심한 경제적 혼란이 발생한 사건이다.[3]https://www.federalreservehistory.org/essays/gold-ring — 1869년 발생한 이 사건은 금 시장 투기로 미국 금융 시장 전체가 흔들린 역사상 최초의 '블랙 프라이데이'다. 현대 사회에서 흔히 소비 대목을 의미하는 쇼핑 시즌인 '블랙 프라이데이'와는 전혀 다른 사건이며, 역사상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명칭이 붙은 최초의 대형 금융 참사로 기록되어 있다.

2.1 개요

남북전쟁 이후 미국 정부는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파운트화나 금으로 환전되지 않는 법정 통화인 '그린백(Greenback)'을 대량으로 발행했다. 이로 인해 미국 경제에는 정부가 발행한 화폐와 실제 금이라는 두 가지 통화 단위가 공존하게 되었으며, 금융 시장에서는 금의 가치를 두고 극심한 투기와 변동성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폐 가치의 안정과 통화량 조절을 위해 미국 재무부는 정기적으로 보유 중인 금을 시장에 매각하여 달러(그린백)를 회수하고 있었다. 정부의 금 매각 작업은 금 시세를 낮게 유지하는 역할을 했으나, 이를 악용하여 거대한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꾼들이 등장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시작되었다.

2.2 사건의 경과

에리 철도(Erie Railroad)의 거두이자 당시 미국 금융가의 대표적인 악덕 투기꾼이었던 제이 굴드(Jay Gould)와 짐 피스크(Jim Fisk)는 뉴욕 금시장의 금을 매집하여 가격을 폭등시키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들의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 특히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t) 대통령이 재무부의 금 매각을 중단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굴드와 피스크는 그랜트 대통령의 매제인 아벨 래스본 코빈(Abel Rathbone Corbin)에게 접근했다.[4]투기꾼 제이 굴드와 짐 피스크는 대통령의 매제까지 포섭하여 정부의 금 매각을 저지하려 시도했다. 그들은 코빈을 포섭한 뒤, 금값이 오르면 곡물 가격이 상승하여 서부의 농산물이 수송될 때 자신들의 철도 운송 수입이 늘어나고 이는 미국 경제 전반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대통령을 설득하도록 유도했다.

그랜트 대통령이 일정 기간 금 매각을 중지하라는 취지의 입장을 보이자, 굴드와 피스크는 비밀리에 막대한 규모의 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1869년 9월 초 130달러 수준이었던 금 1온스의 가격은 폭등하기 시작하여 9월 23일에는 144달러, 9월 24일 아침에는 160달러를 돌파했다.

2.3 폭락과 붕괴

그러나 굴드는 정부 내부 소식통을 통해 그랜트 대통령이 이들의 공작을 눈치채고 재무부에 금 매각을 지시했다는 사실을 짐 피스크 몰래 먼저 파악했다. 굴드는 자신의 동업자인 피스크마저 속인 채 은밀히 보유한 금을 시장에 처분하기 시작했다.

1869년 9월 24일 금요일 정오 무렵, 조지 S. 바트웰(George S. Boutwell) 재무장관의 지시로 미국 정부가 400만 달러 상당의 금을 시장에 즉각 매각한다는 발표가 떨어졌다.

정부의 금이 시장에 풀리자마자 1온스당 162달러까지 치솟았던 금 가격은 몇 분 만에 133달러로 폭락했다. 금값의 거품이 순식간에 꺼지면서 금융 시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2.4 여파 및 영향

이 사건으로 인해 뉴욕 금융가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금값 폭락은 Wall Street 전체의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으며, 무수한 증권사와 투자자들이 하룻밤 사이에 파산했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농산물 가격이 급락하여 서부 농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고, 미국 수출 시장이 마비되는 등 국가적 경제 공황으로 번졌다.

정작 사건을 일으킨 제이 굴드와 짐 피스크는 사법 거래와 호화 변호인단을 활용해 법적 처벌을 대부분 회피했다. 굴드는 동업자 몰래 먼저 금을 팔아치워 오히려 거액의 이득을 챙겼으며, 피스크 역시 계약 이행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손실을 회피했다.

이 사건은 미국 정부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남겼고, 그랜트 행정부의 대표적인 부패 스캔들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또한 행정부의 통화 정책이 특정 투기 세력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냄으로써, 이후 미국의 통화 및 금융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3. 1945년 노르웨이 공중전 사건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2월 9일, 노르웨이 푀르데피요르드(Førdefjorden) 상공에서 영국 연방 공군과 독일 국방군 공군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공중전 사건이다.[5]https://www.raf.mod.uk/our-organisation/squadrons/455-squadron — 쇼핑 행사와 무관하게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 연방 공군이 노르웨이 피요르드 참전 당시 입은 끔찍한 패배를 뜻하는 명칭이기도 하다.

3.1 개요

1945년 2월 9일, 연합군 소속의 댈러스 스트라이크 날개(Dallachy Strike Wing) 연합 편대가 노르웨이 피요르드에 숨어 있던 독일 해군 함정들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공중전이다. 연합군은 독일의 구축함 Z33을 포함한 선박들을 제압하기 위해 대규모 브리스톨 보파이터(Bristol Beaufighter) 중전투기 편대를 투입했으나, 독일 공군 제5전투비행단(JG 5) 소속 포케불프 Fw 190 전투기들의 격렬한 반격을 받았다. 단 수십 분 동안 벌어진 이 전투에서 연합군은 막대한 인명과 기체 손실을 입었으며, 이로 인해 이 날은 연합군 공군 역사상 '검은 금요일(Black Friday)'이라는 비극적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3.2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독일은 스웨덴산 철광석 등 필수 전쟁 물자를 북유럽 루트를 통해 본국으로 수송하고 있었다. 연합군 공군 해안사령부(RAF Coastal Command)는 이러한 독일의 해상 수송 선단을 저지하기 위해 노르웨이 연안에 대한 지속적인 수색과 공격 임무를 수행했다.

1945년 2월 초, 독일 해군의 구축함 Z33이 독일 본국으로 복귀하던 중 노르웨이 연안에서 좌초되어 푀르데피요르드 내부로 견인되었다. Z33과 이를 호위하던 연안 방어선박들은 피요르드의 험준한 지형과 강력한 대공 포화를 방어막 삼아 정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연합군 공군은 이 유력한 표적을 전멸시키기 위해 스코틀랜드 댈러스 기지에서 출격하는 대규모 스트라이크 그룹을 편성했다.

3.3 경과

1945년 2월 9일 오후,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공군 등으로 구성된 제455대대, 제489대대, 제144대대, 제404대대 소속 보파이터 전투기 31대와 이를 호위하는 붉은 여우(Mustang) 전투기 10대가 스코틀랜드를 출발하여 노르웨이 상공으로 진입했다.

연합군 편대가 푀르데피요르드에 도착했을 때, 독일 함정들은 피요르드 협곡 사이에 밀착하여 촘촘한 대공 방어망을 구축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인근 헤르돌라(Herdla) 비행장에서 출격한 독일 공군 제5전투비행단 소속 Fw 190 전투기 9~12대가 연합군 편대를 급습했다.

보파이터 편대는 피요르드의 협소한 지형 때문에 공격 각도를 잡기 어려웠고, 대공포화와 독일 전투기의 협공에 노출되었다. 연합군 조종사들은 거센 대공 포화를 뚫고 구축함 Z33과 호위함들에 로켓탄과 기관포 사격을 가했으나, 고도가 낮고 기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뒤따라온 Fw 190의 치명적인 표적이 되었다. 치열한 혼전이 피요르드 상공에서 펼쳐졌으며, 수많은 기체가 피요르드 수면과 산비탈로 추락했다.

3.4 결과 및 피해

이 전투는 공격 측인 연합군에게 엄청난 참패로 끝났다. 단 한 번의 작전으로 연합군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연합군은 총 9대의 보파이터와 1대의 머스탱 전투기를 잃었으며, 14명의 승무원이 전사하고 2명이 포로로 잡혔다.[6]이 전투에서 연합군은 불과 수십 분 만에 10대의 항공기와 14명의 소중한 조종사 및 승무원을 잃었다. 이는 댈러스 스트라이크 날개가 단일 임무에서 입은 가장 큰 피해였다. 반면 독일군은 Fw 190 전투기 4~5대가 격추되고 조종사 2명이 전사하는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를 입었다. 독일 해군 함정들은 일부 손상을 입었고 대공포 요원 등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나, 주 목표였던 구축함 Z33을 파괴하는 데는 실패했다.

비록 독일군이 전술적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미 기울어진 전쟁의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다. 독일 해군의 Z33은 이후 정비를 마치고 독일 본국으로 복귀했으나 곧 종전을 맞이했다.

3.5 평가 및 유산

푀르데피요르드 공중전은 지형적 불리함과 적의 대공 방어망, 그리고 적 전투기의 개입 가능성을 제대로 산정하지 못한 채 감행된 공격 작전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있다.

현재 노르웨이 푀르데피요르드 지역에는 당시 전사한 양측 조종사들과 승무원들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피요르드 깊은 수중에는 당시 추락한 보파이터와 Fw 190의 잔해가 여전히 남아있어, 현재도 전쟁사학자들과 스쿠버 다이버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4. 여담

4.1 용어의 다의성과 역사적 기원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명칭은 현대에는 대규모 소비 행사를 뜻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심각한 경제적·군사적 참사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먼저 사용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1869년 9월 24일 미국 뉴욕 금시장에서 발생한 대공황이다. 당시 제이 구드(Jay Gould)와 제임스 피스크(James Fisk)라는 두 투기꾼이 정부 소유의 금을 매입하려 시도하면서 금값이 폭등했고, 이에 율리시스 S. 그랜트 행정부가 시장 안정을 위해 400만 달러 상당의 정부 소유 금을 전격 방출하면서 시장이 붕괴했다. 이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고 미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 날이 최초로 '블랙 프라이데이'라 불리게 되었다.

군사사(史)적으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이었던 1945년 2월 9일, 노르웨이 알포르덴(Førdefjord) 상공에서 벌어진 공중전 사건을 가리킨다. 연합군 항공대(주로 영국 공군)가 독일 군함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독일 공군 쥐트(Jg 5) 비행단의 거센 반격을 받아 연합군 전투기 10대가 격추되고 다수의 승무원이 전사하는 참패를 겪었다. 연합군 측은 이 비극적인 날을 '블랙 프라이데이'로 기리고 있다.

4.2 '검은 토요일'에서 유래한 경찰 잔혹사

현대의 쇼핑 대목을 뜻하는 블랙 프라이데이의 유래는 흔히 알려진 '장부상 적자(Red ink)가 흑자(Black ink)로 전환되는 날'이라는 마케팅적 설명과 거리가 멀다. 사실 이 용어는 1960년대 필라델피아 경찰들이 처음 사용한 비속어에 가깝다.

추수감사절 다음 날, 시내로 몰려드는 쇼핑객들과 매년 열리는 육군 대 해군(Army-Navy) 미식축구 경기를 관람하려는 인파로 인해 필라델피아 전역은 극심한 교통 체증과 범죄에 시달렸다.[7]1960년대 필라델피아 경찰들은 추수감사절 다음 날의 극심한 교통 체증과 미식축구 인파로 인한 야근 때문에 이 날을 '검은 금요일'이라 불렀다. 당직을 서야 했던 경찰관들은 수월하게 쉴 수 없는 이 날을 끔찍하다는 의미에서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불렀다.

상인들은 부정적인 어감을 줄이기 위해 한때 '빅 프라이데이(Big Friday)'로 개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흑자 전환'이라는 긍정적인 스토리텔링을 덮어씌워 현재의 이미지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4.3 구매자 간 폭력 사태와 도어버스터 문화

매장 문을 열자마자 달려들어 물건을 채가는 '도어버스터(Doorbuster)' 행위는 매년 물리적 충돌과 인명 피해를 야기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한정 수량의 할인 상품을 차지하기 위해 최루스프레이를 분사하거나 총기를 난사하는 극단적인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미국 내에서는 블랙 프라이데이 관련 폭력 사건으로 인한 부상자 및 사망자 수를 집계하는 비공식 웹사이트('Black Friday Death Count')까지 등장했다.[8]할인 상품을 차지하기 위한 매장 내 폭력과 압사 사고가 빈번해지자, 사망자와 부상자 수를 집계하는 전용 웹사이트까지 개설되었다. 집계에 따르면 2006년 이후 현재까지 최소 10명 이상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4.4 유통 공룡들의 행사 조기 개시 경향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월마트, 타겟 등 미국의 대형 유통 체인들이 경쟁적으로 할인 행사 시작 시각을 앞당기기 시작했다. 금요일 새벽에 문을 열던 과거와 달리, 추수감사절 당일 저녁 5~6시부터 매장을 개방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로 인해 "가족과 함께 감사와 축복을 나누어야 할 추수감사절의 본래 의미를 훼손하고 노동자들의 휴식권을 침해한다"는 강한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근래에는 '브라운 프라이데이(Brown Friday)' 또는 '그레이 프라이데이(Gray Friday)'라는 비꼬는 명칭이 생겨났으며, 최근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다시 추수감사절 당일에는 휴업하고 온라인 중심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4.5 반소비주의 운동의 대립각

블랙 프라이데이의 과도한 소비주의와 환경 파괴적 속성에 반발하여 시작된 사회 운동이다. 1992년 캐나다의 예술가 테드 데이브(Ted Dave)가 제안하고 환경단체 아드버스터즈(Adbusters)가 주도하여 시작된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 캠페인이 대표적이다.[9]https://www.adbusters.org/buy-nothing-day — 소비주의에 반발하여 시작된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운동은 블랙 프라이데이와 같은 날에 맞춰 개최된다.

북미 지역에서는 블랙 프라이데이와 정확히 같은 날에 개최되며, 참가자들은 24시간 동안 일체의 소비를 중단하고 신용카드를 자르거나 쇼핑몰 내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카트를 비운 채 돌아다니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또한 스포츠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는 2011년 블랙 프라이데이에 뉴욕타임스에 "이 자켓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를 실어, 무분별한 소비 대신 기존 제품의 재활용과 수리를 권장하는 역발상 마케팅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10]https://www.patagonia.com/stories/dont-buy-this-jacket-black-friday-and-the-new-york-times/story-18615.html — 파타고니아의 '자켓을 사지 마세요' 광고는 오히려 브랜드 충성도를 극대화하며 매출을 올려준 대표적인 역발상 마케팅 사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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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상업적 흑자 전환설은 1980년대 후반 유통업계가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만들어낸 민간어원설에 가깝다.
  • [2] '문(Door)을 부수고 들어가는 사람(Buster)'이라는 뜻으로,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인파가 몰려드는 모습에서 유래한 용어다.
  • [3] https://www.federalreservehistory.org/essays/gold-ring — 1869년 발생한 이 사건은 금 시장 투기로 미국 금융 시장 전체가 흔들린 역사상 최초의 '블랙 프라이데이'다.
  • [4] 투기꾼 제이 굴드와 짐 피스크는 대통령의 매제까지 포섭하여 정부의 금 매각을 저지하려 시도했다.
  • [5] https://www.raf.mod.uk/our-organisation/squadrons/455-squadron — 쇼핑 행사와 무관하게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 연방 공군이 노르웨이 피요르드 참전 당시 입은 끔찍한 패배를 뜻하는 명칭이기도 하다.
  • [6] 이 전투에서 연합군은 불과 수십 분 만에 10대의 항공기와 14명의 소중한 조종사 및 승무원을 잃었다.
  • [7] 1960년대 필라델피아 경찰들은 추수감사절 다음 날의 극심한 교통 체증과 미식축구 인파로 인한 야근 때문에 이 날을 '검은 금요일'이라 불렀다.
  • [8] 할인 상품을 차지하기 위한 매장 내 폭력과 압사 사고가 빈번해지자, 사망자와 부상자 수를 집계하는 전용 웹사이트까지 개설되었다.
  • [9] https://www.adbusters.org/buy-nothing-day — 소비주의에 반발하여 시작된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운동은 블랙 프라이데이와 같은 날에 맞춰 개최된다.
  • [10] https://www.patagonia.com/stories/dont-buy-this-jacket-black-friday-and-the-new-york-times/story-18615.html — 파타고니아의 '자켓을 사지 마세요' 광고는 오히려 브랜드 충성도를 극대화하며 매출을 올려준 대표적인 역발상 마케팅 사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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