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된 페이지

경성부

경성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치하에서 현재의 서울특별시 지역을 관할하던 지방 행정구역이자 지방자치단체이다.

경성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치하에서 현재의 서울특별시 지역을 관할하던 지방 행정구역이자 지방자치단체이다.

1. 개요

조선시대의 한성부(漢城府)를 승계하여 1910년 국권피탈 직후 설치되었으며, 1945년 광복 이후 서울시로 개칭될 때까지 존속했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아래에 놓인 부(府)였으나, 식민지 조선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서 일제 식민 통치의 핵심 거점 역할을 수행했다.

조선총독부가 위치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 기능을 담당했으며, 이 시기 현대적인 도시 인프라가 대거 격변하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본어 발음으로는 '케이조(Keijō)'라 불렸다.[1]한자 표기 '京城'은 원래 특정 도시의 고유 명사가 아니라 나라의 수도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였다.

2. 역사의 변화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 이후 일제는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 관할 아래 두었다. initial 단계에서는 기존 한성부의 관할 구역을 유지했으나, 1914년 일제의 대규모 행정구역 개편인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해 성저십리(도성 밖 10리)의 상당수 지역이 경기도 고양군 등으로 편입되면서 관할 구역이 축소되기도 했다.

이후 인구 증가와 도시의 급격한 확장에 따라 1936년에 대규모 구역 확장이 단행되었다. 이때 영등포, 여의도, 숭인, 은평, 뚝섬 일대 등 주변 고양군, 시흥군, 김포군의 일부 지역이 경성부에 대거 편입되며 현재의 서울특별시 외곽 틀이 형성되었다. 1943년에는 인구 증가에 따른 행정 효율화를 위해 '구제(區制)'가 실시되어 종로구, 중구, 용산구, 성동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영등포구 등 7개 구가 최초로 설치되었다.[2]1943년 6월 10일 실시된 구제(區制)로 설치된 7개 구 중 영등포구만 유일하게 한강 남쪽에 위치했다.

3. 행정 및 정치

경성부의 최고 책임자는 경성부윤(京城府尹)으로, 이는 현재의 서울특별시장에 해당한다. 경성부윤은 주로 일본인 고위 관료가 독점했으며, 조선인이 임명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부윤 아래에는 부수석, 자문 기관인 경성부회(京城府會) 등이 존재했으나, 실제 결정권은 일제 관료 조직과 조선총독부에 집약되어 있었다.

경성부회 의원 선거가 치러지기도 했으나, 거주 기간과 납세액 등에 따른 엄격한 제한 투표제였기에 사실상 경성 내 일본인 거주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에 불과했다. 행정의 최우선 목적은 조선인 주민의 복리 증진이 아닌 일제 식민 통치 체제의 공고화와 효율적인 수탈이었다.

4. 도시 구조 및 사회

경성부는 경복궁 전면과 태평로, 남촌 일대를 중심으로 전형적인 이중 도시 구조를 띠었다. 청계천을 경계로 하여 북쪽의 '북촌(北村)'에는 주로 조선인들이 거주했고, 남산 기슭의 '남촌(南村)'에는 일본인 거주자가 집단으로 마을을 이루었다.

일제는 남촌과 태평로 일대를 중심으로 관공서, 은행, 백화점 등 현대적 석조 및 벽돌 건물들을 집중적으로 건설했다. 조선총독부 청사, 경성부청(현 서울시청 구본관), 경성역, 한국은행 본점, 미스코시 백화점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도로, 전차 노선, 상하수도 등 제반 인프라 투자가 남촌과 식민 통치용 도로 망에 우선적으로 집중되는 부균형 발전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조선인 거주 지역인 북촌 및 토막민(도시 빈민)들이 모여 살던 외곽 지역은 상대적으로 개발에서 소외되었으며, 식민지 특유의 사회적·계층적 격차가 도시 공간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5. 광복과 해체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하고 광복을 맞이하면서 경성부는 식민 행정기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미군정기인 1946년 8월 15일, '서울시'로 호칭이 변경되었고, 같은 해 9월 28일 미군정령에 의해 경기도 관할에서 벗어나 독립된 행정구역인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되면서 경성부라는 명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6. 여담

6.1 모던보이의 전유물, 황금광 시대와 미츠코시 백화점 옥상

1930년대 경성부는 금광 열풍(황금광 시대)과 소비 문화의 급팽창이 맞물린 유례없는 번영기를 맞이하였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금 매입 정책과 맞물려 금광으로 대박을 터뜨린 이른바 '금광왕'들이 경성으로 모겨들었고, 이들의 재력은 경성 본정(本町, 현 충무로) 일대의 소비재 시장을 감당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1930년에 개점한 미츠코시 백화점 경성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 정원은 경성의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옥돔 요리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허무감을 달래던 대표적인 핫플레이스였다.[3]미츠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당시 최신식 엘리베이터와 옥상정원을 갖추어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의 대표적인 산책 코스였다. 이상(李箱)의 소설 《날개》의 결말부에 등장하는 옥상이 바로 이곳이며, 당시 경성의 첨단 모더니즘과 식민지 지식인의 룸펜적 절망이 교차하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6.2 '남촌'과 '북촌'의 이중도시 구조 및 인종적·계급적 분리

경성부는 청계천을 경계로 일본인 거주지인 남촌(南村)과 조선인 거주지인 북촌(北村)으로 명확히 분리된 이중도시(Dual City) 구조를 띠었다. 본정(충무로), 명치정(명동), 용산 중심의 남촌은 아스팔트 포장, 전기, 상하수도 등 현대적 도시 인프라가 우선적으로 투입되었고 밤마다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빛나 '불야성'을 이루었다. 반면 종로를 중심으로 한 북촌은 토착 조선인들의 거주지로서 인프라 투자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비포장도로와 재래식 시설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러한 공간적 분격은 단순한 지리적 구분을 넘어 일제강점기 경성부 내의 인종적, 계급적 차별이 도시 공간에 그대로 투영된 사례로 평가받는다.

6.3 경성부청사 도면의 '대일(大日)' 자 형상설과 풍수적 잔재

현재 서울특별시청 옛 본관(현 서울도서관)으로 사용되는 경성부청사(1926년 완공)는 건물 평면도가 일자(日) 모양을 띠고 있어, 인근의 조선총독부 청사(大자 형상)와 함께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대일(大日)', 즉 '대일본제국'을 형상화했다는 도시전설이 오랫동안 회자되었다.[4]경성부청의 '日' 자 모양 건물 구조가 조선총독부의 '大' 자 모양과 합쳐져 '大日'을 이룬다는 풍수설설은 대표적인 도시전설로 꼽힌다. 그러나 현대 건축사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전형적인 중정형(中庭型) 관공서 건축 양식이자, 부지 형태에 맞춘 설계의 결과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성 복판의 핵심 축에 식민 통치 기구를 배치하여 한양의 전통적 풍수 체계를 해체하려 했다는 공간 정치학적 의도는 여전히 주요하게 분석된다.

6.4 1930년대 경성부 대확장과 '대경성(大京城)' 구상

1930년대 들어 산업화와 인구 유입으로 도시가 과부하에 걸리자, 경성부는 1936년 조선시가지계획령을 발효하여 관할 구역을 대대적으로 확장하였다. 이때 영등포, 여의도, 마포, 은평, 성북, 뚝섬 등 주변 면적의 70% 이상을 새롭게 편입하며 도시 면적이 기존의 3배 이상으로 넓어졌다. 이것이 이른바 '대경성(大京城)' 구상이다. 특히 영등포 지역의 편입은 경성을 단순한 행정 도시에서 경공업 중심의 공업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때 확장된 경성부의 경계는 광복 이후 경기도의 서울 편입 이전까지 현대 서울특별시의 기본 골격이 되었다.

6.5 전차 노선망과 '경성 스피드'의 탄생

경성부의 내부 교통을 책임지던 핵심 수단은 경성전기주식회사가 운영하던 경성전차였다. 1930년대에 이르러 전차 노선은 십자형 축을 완성하며 경성부 전역을 그물망처럼 연결했다. 당시 전차는 단순히 이동 수단을 넘어 경성이라는 도시의 리듬을 규정하는 요소였다. 특히 종로 선과 남촌의 본정 선을 오가는 전차의 조밀한 배차 간격은 시골에서 상경한 이들에게 소위 '경성 스피드'라 불리는 도시적 시공간 감각을 각인시켰다. 한편, 탑승객이 너무 몰려 전차 문에 걸쳐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나 전차 안에서 벌어지는 소매치기 사건 등은 당시 경성 일간지의 사회면을 단골로 장식하던 풍경이었다.

"경성부"의 하위 문서

아직 없습니다.

하위 문서 만들기

경성부 문서에서 파생될 문서를 생성합니다. 문장 형태의 주제도 가능합니다.

  • [1] 한자 표기 '京城'은 원래 특정 도시의 고유 명사가 아니라 나라의 수도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였다.
  • [2] 1943년 6월 10일 실시된 구제(區制)로 설치된 7개 구 중 영등포구만 유일하게 한강 남쪽에 위치했다.
  • [3] 미츠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당시 최신식 엘리베이터와 옥상정원을 갖추어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의 대표적인 산책 코스였다.
  • [4] 경성부청의 '日' 자 모양 건물 구조가 조선총독부의 '大' 자 모양과 합쳐져 '大日'을 이룬다는 풍수설설은 대표적인 도시전설로 꼽힌다.

본 위키는 AI를 통해 자동생성된 위키이며, 인공지능 환각 등으로 인한 오류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