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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경성(京城)은 일제강점기 시절 현재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지역을 지칭하던 행정구역 명칭이다.

경성
경성(京城)은 일제강점기 시절 현재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지역을 지칭하던 행정구역 명칭이다.
Eunmi Park · CC BY-SA 4.0 · 중화전의 낮.jpg
경성(京城)은 일제강점기 시절 현재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지역을 지칭하던 행정구역 명칭이다.
1. 일제강점기 서울의 지명
1.1 개요
한성부에서 명칭이 바뀐 이후 1910년부터 1945년 해방 직후까지 사용된 서울의 일제강점기 시절 이름이다. 일본어 발음으로는 '케이조(Keijō)'라고 읽었다.[1]당시 일본 서적이나 문서에서는 영문 표기로 'Keijo'를 주로 사용했다.
조선시대에는 수도라는 뜻의 일반명사로서 경성이 쓰이기도 했으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단단히 정식 행정구역명으로 고정되었다. 둔중한 역사적 비극이 서린 지명이지만, 동시에 한국 근대 도시 문화가 본격적으로 싹트고 만개했던 복잡 미묘한 시공간을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현대 매체에서 일제강점기 한반도를 배경으로 할 때 '모던 보이'나 '모던 걸' 같은 낭만화된 근대 이미지와 일제의 수탈 및 항일 투쟁이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하는 장소로 자주 그려진다.
1.2 행정 구역 및 위상
1910년 국권피탈 직후 일제는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 관할 하의 부(府)로 격하시켰다.[2]https://www.law.go.kr — 1910년 9월 30일 다카우치 칙령 제354호에 의해 한성부가 경성부로 개칭되고 경기도 관할 아래 놓였다. 이는 조선의 수도라는 정치적 위상을 해체하고 일제 식민지 지방 행정구역 중 하나로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명백히 반영된 조치였다.
경성부의 수장은 경성부윤이라 불렸으며, 초기에는 한국인 비중이 다수였던 거주 지역과 일본인 거주 지역의 행정 격차가 매우 심각했다. 남산 일대를 중심(남촌)으로 한 일본인 거주지와 청계천 이북(북촌)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 거주지로 공간적, 경제적 분절이 극명하게 나타났다.
이후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에 이르러 일제의 대륙 침략 본격화와 함께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경성부의 구역은 대대적으로 확장되었다. 현재의 영등포, 용산, 성북, 서대문 일대 등이 단계적으로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거대한 식민지 대도시로 공룡화되었다.
1.3 도시 구조와 근대화
경성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위한 거점이자 근대적 도시 계획의 실험장이었다. 광화문 앞 육조거리는 해체되었고, 조선총독부 청사가 경복궁 정면에 들어서며 조선 왕조의 권위는 완전히 훼손되었다.
대신 경성역, 한국은행 본관, 시청, 대형 백화점(화신백화점, 미쓰코시 백화점 등)과 같은 서구식 근대 건축물들이 들어서며 도시의 풍경이 급격히 바뀌었다.[3]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현재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건물 위치에 있었다. 전차가 도시 구석구석을 잇는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도로가 정비되며 자동차가 다녀 도시의 속도감 자체가 이전과 비할 바 없이 빨라졌다.
이러한 근대화는 철저히 일본의 식민 통치 효율성과 자국민의 편의를 위해 추진되었다. 도시 인프라의 혜택은 주로 남촌의 일본인들에게 집중되었으며, 북촌의 조선인들은 위생, 도로, 전기 등 기초적인 생활 환경에서조차 차별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성은 한반도 각지에서 사람이 모여드는 인구 용광로이자 새로운 문물이 가장 먼저 유입되는 근대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4 사회 및 문화
경성은 식민지배의 모순과 근대 문명의 혜택이 이상하게 비틀린 채 얽혀 있던 공간이었다. 카페, 영화관, 백화점, 기생집, 다방 등이 번화가를 메웠고, 신문물과 최신 유행을 좇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등장하여 거리를 거닐었다.
이 시기 경성에서는 잡지와 신문 등 언론·출판업이 활기를 띠었고, 이태준, 이상, 박태원 등 소설가들이 경성의 일상과 모더니즘을 작품 속에 활발히 담아냈다.[4]소설가 이상은 직접 '제비다방'이라는 다방을 개업해 운영하기도 했다. 청계천변의 빈민가인 토막촌과 본정(충무로)의 화려한 백화점이 대비되는 빈부격차 및 민족적 차별은 당시 경성이라는 공간이 가진 극단적인 두 얼굴이었다.
또한 경성은 3·1 운동을 비롯한 각종 항일 독립운동과 학생 운동, 노동 운동의 도화선이 되는 정치적 공간이기도 했다. 일제의 엄중한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민족의 의지와 근대적 지성이 부딪히는 역동적인 장소였다.
1.5 해방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면서 경성이라는 지명은 잔재 청산의 대상이 되었다. 해방 직후 한동안 경성이라는 이름이 관성적으로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했으나, 이듬해인 1946년 8월 '서울시 가칭 결정안'이 배포되고 당해 10월 '서울특별시영'이 공포되면서 공식적으로 순우리말 지명인 서울로 개칭되었다.[5]https://www.archives.go.kr — 1946년 10월 18일 미군정령 제106호 '서울특별시영'이 공포되며 경성부라는 지명이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이로써 경성이라는 명칭은 공식 행정구역 이름에서 완전히 소멸하였으며, 현재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정 역사적 시대를 지칭하는 대명사적 지명으로만 남아있다.
2. 북한 함경북도 경성군
경성군(鏡城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동해안 중앙부에 위치한 군으로, 예로부터 온천과 도자기, 그리고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잘 알려진 지역이다.
2.1 개요
한반도 동북부 함북 해안지대의 중심지 중 하나로, 조선시대에는 함경도의 명칭 유래가 된 경성목(鏡城牧)이 설치되었을 정도로 역사적 위상이 높은 고을이었다.
동쪽으로는 동해와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관모봉을 비롯한 높은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청진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행정 중심지로서의 기능이 다소 축소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함경북도 내에서 역사와 전통, 관광 자원을 두루 갖춘 주요 거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2 역사
고구려와 발해의 영역에 속해 있었으며, 이후 여진족의 활동 무대가 되었다가 고려 말과 조선 초에 걸쳐 한반도의 영역으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조상들이 기반을 잡았던 지역 중 하나로, 왕조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다.
1398년 경성덕주도독부가 설치된 이후 1400년에 경성군으로 개편되었고, 1432년에는 경성목으로 승격되었다. 함경도라는 도명 자체가 함흥과 이 경성의 앞 글자를 따서 지어진 것만 보아도 이 지역의 역사적 무게감을 실감할 수 있다.[6]https://sillok.history.go.kr — 조선 시대 도 이름은 그 지역의 대표적인 고을 두 곳의 앞 글자를 따서 지었다.
조선 시대 내내 북방 방어의 전초 기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로서 경성읍성이 구축되었으며, 수군절도사와 병마절도사가 머무는 등 동북방의 행정 및 군사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 해방 이후 북한 체제 하에서도 경성군으로 유지되고 있으나, 일부 지역이 청진시로 편입되거나 인근 군으로 분리되는 등 경계 변동을 겪었다.
2.3 지리 및 기후
지형적으로는 서고동저의 형태를 띤다. 서쪽은 함경산맥의 줄기가 뻗어 있어 관모봉(2,541m)을 비롯한 험준한 산악 지대를 이루고, 동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낮아져 동해안의 평야 및 해안 지대로 이어진다.
기후는 동해의 영향을 받는 해양성 기후의 특성을 다소 띠고 있어, 같은 위도의 함경북도 내륙 지역에 비해서는 겨울이 덜 추운 편이다. 다만 북한 지역 특유의 대륙성 기후 영향도 함께 받기 때문에 연교차가 크며, 연평균 기온은 약 6~7℃ 안팎을 기록한다.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사구와 소나무 숲은 경성군의 대표적인 풍광 중 하나로 꼽힌다.
2.4 경제 및 산업
전통적인 농업과 수산업이 발달하였으나, 경성군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산업은 단연 도자기 공업과 온천 관련 산업이다.
경성 도자기는 품질이 뛰어난 카올린(고령토) 매장량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발달했다. 경성도자기공장을 비롯한 대규모 도자기 생산 시설이 입지해 있어, 북한 내에서도 손꼽히는 도자기 생산 기지로 알려져 있다. 생활용 도자기부터 수출용 화려한 공예 도자기까지 다양하게 생산한다.
농업은 해안 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벼농사가 이루어지며, 산간 지대에서는 옥수수, 콩, 감자 등의 밭작물 재배와 과수업이 성행한다. 수산업 역시 동해안을 끼고 있어 오징어, 명태, 조개류 등의 포획 및 양식이 이루어진다.
2.5 관광 및 특산물
경성군 최고의 관광 자원은 단연 온천이다. 경성온천(하온천)과 승암온천 등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스파 지역으로, 라돈과 유황 성분이 풍부하여 피부병과 신경통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7]경성온천은 고려 시대부터 신비한 효능이 있는 온정(溫井)으로 이름나 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유명 휴양지로 개발되었으며, 현재도 북한 내에서 손꼽히는 휴양시설과 요양소가 집중되어 있다.
자연경관으로는 경성읍성과 인근의 해안 솔밭, 그리고 웅장한 관모봉 줄기가 이뤄내는 풍경이 유명하다. 조선 시대 군사 요새였던 경성읍성은 현재 국가지정문화재급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남문인 진남루 등이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특산물로는 앞서 언급한 경성 도자기와 함께 온천수를 이용한 재배 생산물, 그리고 동해에서 잡히는 신선한 해산물이 으뜸으로 꼽힌다.
2.6 교통
평라선(평양-라선) 철도가 군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어 철도 교통이 비교적 편리하다. 경성역과 승암역 등이 주요 정차역으로 기능하며, 이를 통해 청진, 길주, 함흥, 평양 등 주요 도시로의 이동이 가능하다.
도로 망 역시 동해안을 따라 난 도로를 통해 북쪽의 청진시, 남쪽의 길주군 및 명천군과 연결된다. 다만 지형적 특성상 서쪽 산악 지대로의 도로망은 다소 험준한 편이다.
3. 물체의 단단한 성질
경성(Hardness, 硬性)은 물체가 외부에서 가해지는 기계적 힘이나 압력에 대해 변형되거나 긁히지 않고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저항의 정도를 나타내는 물질의 물리적 특성이다.
3.1 개요
쉽게 말해 물체가 얼마나 '단단한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일상생활에서는 강도(Strength)나 인성(Toughness)과 혼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물리적·재료공학적 정의에서 경성은 어디까지나 물체의 '표면이 얼마나 잘 긁히지 않는가' 또는 '압입체에 대해 얼마나 잘 버티는가'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아무리 망치로 쳤을 때 깨지지 않고 잘 버티는 물체라 할지라도, 커터칼로 쉽게 긁힌다면 경성이 낮다고 표현한다. 반대로 유리는 쉽게 깨지지만 칼로 긁기 어렵기 때문에 경성이 높은 물질에 속한다. 경성은 재료의 내마모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공학 설계 및 산업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특성 중 하나다.
3.2 강도 및 인성과의 차이점
재료의 물리적 성질을 다룰 때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오해가 바로 경성, 강도, 인성의 혼동이다. 이 셋은 엄연히 다른 성질을 가리킨다.
경성이 외부 충격에 의한 표면의 긁힘이나 파임에 저항하는 성질이라면, 강도는 물체가 파괴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최대 응력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는 경성이 극도로 높아 지구상에서 가장 잘 긁히지 않는 물질이지만, 망치로 강하게 내리치면 결을 따라 깨질 수 있으므로 절대적인 강도가 무한히 높은 것은 아니다.[8]다이아몬드는 긁힘에는 극도로 강하지만 망치로 쪼개는 결 충격에는 의외로 쉽게 깨진다.
인성은 물체가 충격을 받았을 때 에너지를 흡수하며 버티는 끈질긴 성질, 즉 깨지지 않는 성질을 뜻한다. 경도가 매우 높은 물질들은 대체로 유연성이 떨어져 잘 깨지는 변덕을 부리는데, 이를 '취성(단단하지만 잘 깨지는 성질)'이 크다고 한다. 결국 경성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튼튼한 물질은 아니며, 용도에 따라 세 가지 성질을 적절히 조율하는 것이 재료공학의 핵심이다.
3.3 측정 방법
경성은 절대적인 물리량을 직접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로 상대적인 비교나 표준화된 시험법을 통해 수치화한다. 대표적인 경도 측정 방식은 다음과 같다.
모스 경도계는 광물의 상대적인 단단함을 비교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장 고전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이다. 1부터 10까지의 표준 광물을 정해두고, 두 물체를 서로 문질러 긁히는 쪽이 경도가 낮다고 판단한다. 숫자가 높을수록 단단하며, 다이아몬드가 가장 높은 10을 차지하고 있다.[9]https://www.kigam.re.kr — 독일의 광물학자 프리드리히 모스가 1812년에 제안한 상대적 경도 척도다. 다만 정량적인 수치라기보다는 순위에 가깝다는 한계가 있다.
비커스 경도 시험은 다이아몬드 사각뿔 형태의 압입체를 물질 표면에 누른 뒤, 생성된 자국의 면적을 측정하여 경도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매우 얇은 재료나 미세한 조직의 경도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어 학술 및 산업계에서 폭넓게 쓰인다.
로크웰 경도 시험은 정해진 하중을 가했을 때 압입체가 파고든 '깊이'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측정 과정이 매우 빠르고 간단하여 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수치화 방식이다.
브리넬 경도 시험은 강철이나 초경합금 구체를 높은 하중으로 눌러 자국의 지름을 측정한다. 주철이나 주조품처럼 조직이 치밀하지 않은 재료의 평균적인 경도를 측정할 때 유용하다.
3.4 결정 요인 및 조절
물체의 경성을 결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원자 간의 결합력과 결정 구조다. 탄소 원자들이 극도로 치밀한 공유 결합을 이루고 있는 다이아몬드가 압도적인 경도를 자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金属 재료의 경우, 결정 격자 내의 결함이나 원자 배열의 밀집도에 따라 경도가 크게 달라진다.
산업 현장에서는 금속의 경성을 인위적으로 올려 쓰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열처리다. 강철을 고온으로 가열했다가 급격히 식히는 담금질을 거치면 내부 결정 구조가 변형되면서 경도가 극적으로 상승한다. 또한 금속 표면에 탄소나 질소를 침투시키는 표면 경화 기술이나, 금속을 두들겨 결정 격자를 비틀어버리는 가공 경화 방식 등을 통해 물리적 성질을 원하는 대로 조율한다.


4. 여담
4.1 일제강점기 서울(京城)의 다층적 지위와 어원적 착시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부(京城府)'는 경기도 산하의 행정구역이었으나, 실제로는 조선총독부가 위치한 수부(首府)로서 사실상 도(道) 이상의 특수 지위를 누렸다. 재미있는 점은 '경성'이라는 명칭 자체가 일제가 강제로 만든 창씨개명식 지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수도 한양을 높여 부르거나 별칭으로 부를 때 '경성'이라는 단어를 널리 사용했다.[10]조선왕조실록 등 전근대 기록에서도 한성을 가리켜 경성이라 부른 사례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다만, 일제가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한성부(漢城府)'라는 역사적 명칭을 폄하하고 공식 지명으로 고착화했다는 점에서 민족적 반발을 샀다. 한편, 당시 일본어 발음인 '케이죠(Keijō)'로 불리며 서구권에 알려지기도 했다.
4.2 동음이의어 간의 한자 표기 및 의미 차이
한글로는 동일하게 '경성'으로 표기되나 한자 표기와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 구분 | 한자 | 핵심 의미 | 비고 |
| :--- | :--- | :--- | :--- |
| 일제강점기 서울 | 京城 | 서울 경, 재 성 | '수도(Capital)'를 의미하는 대명사적 지명 |
| 함경북도 경성군 | 鏡城 | 거울 경, 재 성 | 조선 시대 거울처럼 맑은 물과 완벽한 방어를 뜻함 |
| 물리학·재료학 | 驚性 / 剛性 / 硬性 | 단단할 경/강, 성품 성 | 주로 단단함(Hardness)이나 뻣뻣함(Stiffness)을 의미 |
특히 물리학적 성질을 뜻할 때는 단단한 정도인 경도(Hardness, 硬度)와 변형에 저항하는 정도인 강성(Stiffness, 剛性)이 혼용되기도 하므로 문맥에 따른 구분이 필요하다.
4.3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의 온천과 특산품
북한 함경북도에 위치한 경성군은 과거 길주경성유도진(吉州鏡城儒導鎭)의 중심지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함경도 관찰사의 영아가 위치했던 군사·행정의 요충지였다. 일제강점기 서울과 이름이 같아 간혹 오해를 사지만, 이곳은 한반도 북부의 대표적인 온천 휴양지로 유명하다. 특히 '경성온천(하온천)'은 조선 왕조 실록에도 세종대왕이 피부병 치료를 위해 찾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11]https://sillok.history.go.kr —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피부병 치료를 위해 함경도 경성 온천에 행차하거나 온천수를 전하라는 교지를 내린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는 '경성도자기'로 불리며 북한 내에서 최고급 도자기 명산지로 꼽힌다.
4.4 경성(硬性)과 연성(軟性)의 대립구도 및 문화적 확장
재료공학에서 물체의 단단한 성질을 뜻하는 '경성(Rigid/Hard)'은 유연함을 뜻하는 '연성(Ductile/Soft)'과 대립 개념을 이룬다. 이 과학적 용어는 현대에 이르러 문화 및 대중매체 영역으로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물리적 '단단함'을 뜻하는 단어가 현대에는 '타협하지 않는 엄격함'이나 '원칙주의적 성향'을 비유하는 수식어로 자주 쓰인다.
4.5 '경성' 지명의 대중문화적 로맨티시즘과 페티시즘
2000년대 이후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경성'은 단순한 치욕의 역사를 넘어 모던보이, 모던걸, 모던 카페, 기호품(커피, 인력거) 등이 교차하는 '모던 경성'이라는 고유한 레트로 미학의 아이콘으로 소비되고 있다. 드라마 《경성스캔들》, 《미스터 션샤인》, 영화 《암살》, 게임 및 소설 등에서 일제강점기라는 비극적 시대상과 근대적 화려함이 조화된 묘한 아포칼립스적·낭만적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으로 재구성된다. 이는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실제와 대중매체 속 판타지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일종의 '시대극적 기호'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