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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이 전혀 없다면 국가들은 어떻게 될까?


무역이 전혀 없는 완벽한 폐쇄 경제(Autarky) 상태에서 국가들은 자원과 기술의 불균형으로 인해 전반적인 생활 수준의 급격한 하락과 경제적 퇴행을 겪게 된다.

무역이 전혀 없다면 국가들은 어떻게 될까?
무역이 전혀 없는 완벽한 폐쇄 경제(Autarky) 상태에서 국가들은 자원과 기술의 불균형으로 인해 전반적인 생활 수준의 급격한 하락과 경제적 퇴행을 겪게 된다.
Dinkun Chen · CC BY-SA 4.0 · INTERNATIONAL FOREIGN TRADE CENTER (GUOMAO BUILDING).jpg
1. 무역이 전혀 없다면 국가들은 어떻게 될까?
무역이 전혀 없는 완벽한 폐쇄 경제(Autarky) 상태에서 국가들은 자원과 기술의 불균형으로 인해 전반적인 생활 수준의 급격한 하락과 경제적 퇴행을 겪게 된다.
1.1 개요
무역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를 경제학에서는 극단적인 형태의 '자급자족 경제' 또는 '폐쇄 경제'라 부른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국가들은 크든 작든 타국과의 교역을 통해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조달하고 있으나, 만약 국제 무역이 완전히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은 자국 내부의 자원과 기술만으로 생존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 문명의 해체에 준하는 엄청난 타격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1.2 경제적 영향: 절대우위와 비교우위의 상실
무역이 사라지면 경제학의 핵심 원리인 비교우위론에 따른 이점이 완전히 소멸한다.[1]데이비드 리카도가 1817년 제창한 이론으로, 한 국가가 모든 재화의 생산에 열위에 있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효율적인 상품에 집중하면 양국 모두 이득을 본다는 경제학의 핵심 개념이다. 각 국가는 자신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물품에 집중하고 그렇지 못한 물품은 수입함으로써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해 왔다. 하지만 무역이 끊기면 효율성과 관계없이 자국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직접 생산해야 한다.
이로 인해 산업 전반의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예를 들어 바나나를 재배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를 가진 국가가 자국 소비를 위해 막대한 전력과 온실 시설을 투입해 바나나를 키워야 하는 식의 자원 낭비가 일상화된다.[2]비교우위론 설명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인 예시다. 실제로 영국이나 북유럽 국가가 비닐하우스에서 바나나를 재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열대 지방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비용이 극단적으로 많이 든다. 결과적으로 모든 재화의 생산 비용이 폭등하고, 생산 가능한 물량 자체가 줄어들어 전 세계적인 물자 부족 현상에 시달리게 된다.
1.3 자원 불균형과 첨단 산업의 마비
지구상의 자원은 철저하게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 석유, 천연가스, 희토류, 원자력 연료 등의 매장량은 특정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무역이 없다면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국가는 즉시 에너지는 물론 석유화학 제품, 플라스틱, 비료 등의 생산이 불가능해진다.
특히 현대 첨단 산업은 직격탄을 맞는다. 스마트폰이나 반도체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 세계 수십 개 국에서 채굴되고 가공된 원자재와 부품이 필요하다.[3]스마트폰 하나에는 60여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원소와 광물이 사용되며, 생산 공정은 전 세계 수천 개 공급망으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무역이 중단되면 그 어떤 국가도 독자적으로 최첨단 IT 기기나 자동차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결국 기술 발전은 멈추고 산업 수준은 몇 십 년, 혹은 수백 년 전으로 퇴보할 수밖에 없다.
1.4 식량 안보와 생존의 위기
식량 자급률이 낮은 국가들에게 무역의 중단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생존의 문제, 즉 대기근으로 직결된다. 토지가 협소하거나 기후가 벼농사 및 밀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국가들은 자국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식량조차 확보하지 못한다.
반대로 식량이 남는 농업 강국이라 할지라도 안심할 수 없다. 농기계를 구동할 연료나 수입 비료, 농약 등이 부족해지면서 농업 생산량이 크게 감소하기 때문이다. 또한 남는 식량을 수출하지 못해 농가 경제가 파탄에 이르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1.5 사회·문화적 변화와 국가 형태의 변화
무역의 부재는 단순한 물자의 이동 차단에 그치지 않고 정보, 문화, 인적 교류의 단절로 이어진다. 각 국가는 타국과의 비교 대상이 사라지면서 기술적·문화적 갈라파고스화를 겪게 된다.
경제적 풍요가 사라진 자리를 국가의 강력한 통제와 배급제가 채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명목 하에 정부의 권력이 비대해지며,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소비의 선택권은 사실상 소멸한다. 글로벌화 시대 이전의 정체되고 고립된 사회로 회귀하는 셈이다.
1.6 국가별 영향의 양극화
모든 국가가 타격을 받지만, 그 피해의 크기는 자국이 보유한 영토의 크기, 인구, 자원량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2. 여담
2.1 커피와 초콜릿의 세계적 대근절
무역이 중단될 경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직관적으로 타격을 입는 분야는 식문화다. 커피콩의 주 생산지인 '커피 벨트(적도 인근)' 이외의 지역, 특히 한국이나 유럽, 북미 전역에서는 커피가 아예 자취를 감추게 된다.[4]커피나무는 남위 25도에서 북위 25도 사이의 적도 지역인 일명 '커피 벨트'에서만 주로 자란다. 과거 전쟁 등으로 무역이 봉쇄되었을 때 유럽에서는 칙코리나 볶은 보리를 커피 대용품으로 마셨다. 커피 대체품으로 볶은 보리차나 칡뿌리가 급부상하겠으나 완벽한 대체는 불가능하다. 카카오 생산 역시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있어 전 세계적인 '초콜릿 기근'이 도래한다. 결과적으로 고위도 국가에서 커피와 초콜릿은 왕족이나 최고 권력층만 접할 수 있었던 18세기 이전의 극상위 프리미엄 사치품으로 격상된다.
2.2 첨단 IT 문명의 강제 리셋과 리소노믹스(Resourcenomics)의 종말
스마트폰, 자율주행차, AI 서버 등 현대 첨단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생산이 완벽히 불가능해진다. 반도체 제조는 대만의 위탁생산(TSMC), 한국의 메모리, 미국의 설계, 네덜란드의 노광장비(ASML), 일본의 소재가 얽혀있는 극단적인 분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5]https://www.asml.com/en/company/about-asml — 네덜란드의 ASML은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세계 유일의 기업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대표적인 핵심 병목 지점으로 꼽힌다.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난 국가라 할지라도 자국 내에 희토류나 원유, 특수 가스 등이 매장되어 있지 않다면 1980년대 수준의 가전제품조차 제성능으로 생산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지식 기반 사회에서 다시 1차 산업 중심의 자원 보유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기형적 구조로 역행한다.
2.3 식량 자급률 불능 국가의 대규모 인구 대란
식량 자급률이 낮은 국가들, 특히 영토가 좁고 인구 밀도가 높은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은 즉각적인 생존 위기에 직면한다. 단순히 비료와 사료의 수입이 막히는 것만으로도 자국 내 농축산업 생산량이 폭락하기 때문이다. 질소 비료의 원료인 천연가스와 인산염, 칼륨 등의 자원이 없는 국가에서는 농작물 수확량이 전성기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며, 이는 필연적으로 대규모 기아와 급격한 인구 감소(디파퓰레이션)로 이어진다. 반면 미국, 브라질, 호주 등은 식량 자급을 넘어 식량이 과잉 공급되는 극단적 양극화가 발생한다.
2.4 에너토피아의 몰락과 중세 수준의 입지 조건 회복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의 이동이 정지되면서 비산유국들의 전력망은 사실상 마비된다. 신재생 에너지 설비를 구축하려 해도 이에 필요한 희귀 금속과 부품 수입이 불가능하므로 장기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국가의 산업 규모와 도시의 발전 가능성은 '자국 땅 밑에 뭐가 묻혀 있는가'와 '바람과 햇빛이 얼마나 드는가'라는 절대적인 자연 조건에 의해 강제로 제한된다. 19세기 산업혁명 이전처럼 강가나 탄광 인근으로 인구가 다시 모여드는 '강제적 고전주의 도시화'가 진행된다.
2.5 동질화된 글로벌 문화의 파편화 및 국산화
유튜브, 넷플릭스, 할리우드 영화 등 글로벌 콘텐츠 시장이 전멸하고, 데이터 해저 케이블의 유지보수 불가로 인해 '국가망(Intranet)' 수준으로 인터넷이 축소된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인 문화적 동질화 현상이 정지되고, 각 국가별로 극단적인 형태의 문화적 자국 중심주의가 발달한다. 해외 문화를 접할 길이 완전히 차단됨에 따라, 2000년대 이후 사라졌던 각국 고유의 민속 문화나 지역 색채가 강제로 부활하는 역설적인 문화적 다형성(Polymorphism)이 나타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