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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는 왜 이름을 빼앗겼을까?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인공 오기노 치히로가 마녀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기는 설정은 세계관 내적 통제 메커니즘과 서사적 구원, 그리고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결합된 핵심적 장치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는 왜 이름을 빼앗겼을까?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인공 오기노 치히로가 마녀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기는 설정은 세계관 내적 통제 메커니즘과 서사적 구원, 그리고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결합된 핵심적 장치이다.
Studio Ghibli · Public domain · Sen to Chihiro no kamikakushi title.jpg
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는 왜 이름을 빼앗겼을까?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인공 오기노 치히로가 마녀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기는 설정은 세계관 내적 통제 메커니즘과 서사적 구원, 그리고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결합된 핵심적 장치이다.
1.1 세계관 내적 이유: 속박과 지배의 수단
온천장 '아부라야'를 지배하는 마녀 유바바는 인간 세계에서 들어온 치히로와 근로 계약을 맺으며 그녀의 본명인 '오기노 치히로(荻野 千尋)'에서 '센(千)'이라는 외자 이름만 남기고 빼앗아 버린다.[1]계약서 서명 장면을 자세히 보면 치히로는 자신의 이름인 '荻野千尋' 중 '荻' 자의 오른쪽 아래 요소인 '火'를 '犬'으로 잘못 적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는 신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강력한 주술적 계약 행위로 설명된다. 이름을 빼앗긴 자는 자신의 원래 정체성과 돌아갈 곳을 잊어버리게 되며, 결국 유바바의 지배 아래에서 영원히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에 갇히게 된다. 작중 하쿠 역시 유바바에게 본명을 빼앗긴 탓에 자신의 정체를 잊고 그녀의 밑에서 악행을 대행하는 사역마로 전락해 있었다. 즉, 이름의 박탈은 피지배자의 자아를 해체하여 완벽한 통제 하에 두기 위한 일종의 주술적 속박이다.
1.2 정체성 잃기와 자아 찾기 (주제적 관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현대 사회 아동과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반영하고자 했다. 주인공 치히로는 작품 초반부만 해도 떼를 쓰고 기운이 없는 전형적인 무기력한 현대 아동으로 묘사된다. 신들의 세계라는 가혹한 환경에 던져진 치히로가 '센'이라는 획일화된 이름으로 불리며 노동에 투입되는 것은, 사회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개성이 erasure(소멸)되고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대변한다. 그러나 치히로는 하쿠가 준 주먹밥을 먹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진짜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고, 이 과정에서 타인에게 의존하던 아이에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성장하게 된다.[2]치히로가 울면서 주먹밥을 먹는 유명한 장면은 작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연출을 위해 직접 주먹밥 베어 물기 시연을 해가며 공을 들인 대표적 명장면이다. 이름을 되찾는 과정 자체가 곧 잃어버린 자아와 주체성을 회복하는 서사적 구원의 길인 셈이다.
1.3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에 대한 비판
이름을 빼앗기고 숫자나 단순한 기호로 불리는 행위는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의 인간 소외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부라야라는 온천장은 철저하게 금전과 효율성에 의해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곳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나 개별적 서사는 부정되며, 오직 '노동력'으로서의 가치만이 인정된다. 유바바가 치히로의 복잡한 이름에서 단 한 자만 남기고 지워버린 것은, 인격을 가진 한 인간을 오직 생산성을 내는 하나의 부품으로 규격화하려는 자본의 속성을 상징한다. 결국 치히로가 이름을 빼앗긴 사건은 물질만능주의 사회가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어떻게 탈취하고 압살하는지를 보여주는 비판적 알레고리라 할 수 있다.


2. 여담
2.1 유곽(遊郭)의 매춘 문화와 '겐지나(源氏名)' 모티브
마녀 유바바가 치히로의 이름을 빼앗고 '센(千)'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설정은, Edo 시대 유곽에서 유녀들이 본명을 숨기고 활동명인 '겐지나'를 사용했던 전통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현대 사회는 풍속업(매춘업)과 유사하며, 온천장(온센)이라는 공간 역시 과거의 유곽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3]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지브리 관련 매체 인터뷰에서 현대 사회가 풍속업과 다름없으며, 온천장은 남성 고객을 맞이하던 과거 유곽의 구조를 가졌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이름을 빼앗긴다는 것은 자신의 본래 정체성과 과거를 봉인당한 채, 온천장이라는 자본주의적 노동 시장에 구속되는 성인식(Initiation) 과정을 비유한다.
2.2 자본주의적 노동 착취와 인간성의 '상품화'
이름을 잃고 단지 숫자를 뜻하는 '센(千)'으로 불리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개인의 고유한 인격이 단지 '체크카드 번호'나 '사번'과 같은 단순 노동력(수치)으로 환원되는 비인간화 현상을 상징한다. 유바바는 직원의 본명을 지움으로써 그들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의지를 꺾고, 영원히 온천장에 귀속되어 부를 창출하는 부품으로 활용한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이름을 완전히 잊어버린 하쿠는 유바바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로 존재한다.
2.3 일본의 전통 주술 '고토다마(언령·言靈)' 사상
신토(神道)와 일본의 기토(祈禱) 문화에서 본명은 그 사람의 영혼이자 정체성의 핵심을 담고 있는 주술적 매개체로 여겨진다. 상대의 본명을 지배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바바가 치히로의 계약서에서 이름의 일부(荻野 千尋 중 '荻野'와 '尋')를 빼앗아 지워버리는 행위는, 치히로에게 걸린 강력한 주술적 속박이며, 이 주술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열쇠 역시 '자신의 본명을 기억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2.4 자아 정체성의 상실과 아동에서 사회인으로의 이행
이름을 빼앗기는 과정은 부모의 보호를 받던 유년기의 '자아'가 해체되고,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으로 편입되는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를 뜻한다. 작품 초반의 치히로는 어리광 많고 수동적인 아이였으나, 이름을 잃고 '센'으로서 혹독한 노동을 겪으며 점차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인물로 성장한다. 즉, 이름을 빼앗기는 시련은 잃어버린 본명(진정한 자아)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성찰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디딤돌로 작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