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된 페이지
상위 문서: 냉장고
음식은 왜 냉장고에 넣으면 오래 보관될까?


음식을 냉장고에 넣으면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이유는 낮은 온도가 식품의 부패를 유발하는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고 화학 반응 및 효소 작용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둔화시키기 때문이다.

음식은 왜 냉장고에 넣으면 오래 보관될까?
음식을 냉장고에 넣으면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이유는 낮은 온도가 식품의 부패를 유발하는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고 화학 반응 및 효소 작용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둔화시키기 때문이다.
W.carter · CC BY-SA 4.0 · Open refrigerator with food at night.jpg
1. 음식은 왜 냉장고에 넣으면 오래 보관될까?
음식을 냉장고에 넣으면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이유는 낮은 온도가 식품의 부패를 유발하는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고 화학 반응 및 효소 작용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둔화시키기 때문이다.
1.1 개요
인류가 불을 발견한 이래 거둔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히는 냉장고는 현대 문명에서 식생활의 패러다임을 바꾼 핵심 가전제품이다.[1]1927년 제너럴 일렉트릭(GE)이 출시한 '모니터 탑(Monitor-Top)'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가정용 냉장고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과거에는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는 등 까다로운 방부 과정을 거쳐야만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었으나, 냉장고의 등장으로 단순히 전기를 꽂고 음식을 집어넣는 것만으로 보존 기간을 수배에서 수십 배까지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법칙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음식의 부패 프로세스 자체를 지연시키는 데 있다.
1.2 미생물 증식의 억제
음식이 상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세균이나 곰팡이 같은 미생물이 음식물에 침투하여 단백질이나 지방, 탄수화물을 분해하고 그 과정에서 독소나 악취를 풍기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들 미생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존과 번식에 적합한 온도 영역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식중독균과 부패 미생물은 영하 10도에서 영상 60도 사이, 특히 인간의 체온과 비슷한 20도에서 40도 사이의 상온에서 폭발적인 기하급수적 증식을 수행한다.
그러나 온도계의 눈금이 섭씨 4도 이하로 떨어지면 미생물의 신진대사는 극도로 위축된다. 냉장고 내부의 낮은 온도는 미생물을 완전히 사멸시키지는 못하지만, 미생물 내부의 세포막 유동성을 떨어뜨리고 수송 체계를 마비시켜 이들이 분열하고 증식하는 속도를 둔화시킨다. 상온에서는 수십 분 만에 두 배로 늘어나는 세균이 냉장 조건에서는 며칠이 지나야 겨우 증식하는 수준으로 억제되는 것이다.
1.3 화학 반응 및 효소 작용의 지연
음식의 부패와 변질은 단지 외부 미생물 때문만은 아니며, 음식 자체가 가진 자체 효소와 산소의 결합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사과의 갈변 현상이나 고기 지방의 산패가 대표적이다.
스웨덴의 화학자 아레니우스가 정립한 아레니우스 방정식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온도가 섭씨 10도 낮아질 때마다 화학 반응 속도는 약 절반에서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다.[2]https://www.nobelprize.org/prizes/chemistry/1903/arrhenius/biographical — 아레니우스는 이 화학 반응 속도 연구로 1903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음식물 내부의 화학적 변화 역시 이 법칙을 그대로 따른다.
음식물에 포함된 유기물이 산소와 반응하여 산화되거나 자체 함유된 효소에 의해 스스로 분해되는 오토파지(자체 분해) 현상은 온도에 매우 민감하다. 냉장고의 저온 환경은 이러한 화학적 반응 에너지 자체를 낮추어, 식품이 스스로 썩어가거나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해 변질되는 속도를 극적으로 둔화시킨다.
1.4 수분 증발과 물리적 상태의 유지
식품의 신선도를 결정짓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수분이다. 상온의 건조한 공기에 음식을 방치하면 수분이 빠르게 증발하여 식품의 수분 활성도가 변하고 식감이 파괴된다.
냉장고 내부는 밀폐된 공간으로서 일정한 습도가 유지되는 경향이 있으며, 저온 환경은 수분 분자의 운동 에너지를 줄여 공기 중으로 날아가는 증발 현상을 감소시킨다. 냉동실의 경우, 식품 내부의 수분을 얼음 결정 형태로 고정하여 미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유효 수분 자체를 제거해 버리는 물리적 방부 효과를 발휘한다.
1.5 보관의 한계와 주의점
냉장고가 만능 방부제는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냉장 조작은 미생물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시정지' 혹은 '느리게 재생'하는 것에 불과하다.
저온에서도 유유히 번식하는 리스테리아균이나 여신균 같은 저온 다습성 균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고 해서 음식을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는 없다. 또한, 냉동 보관을 하더라도 장기간 방치하면 얼음 결정이 세포벽을 파괴하여 해동 시 드립(Drip) 현상으로 인한 맛과 영양소의 손실이 발생하며, 지방의 완만한 산패 역시 막을 수 없다. 따라서 냉장고는 부패를 지연시켜 주는 시간 벌기용 장치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2. 여담
2.1 분자 운동의 둔화와 반응 속도
냉장 보관의 핵심 원리는 온도 하강에 따른 물질의 분자 운동 저하에 있다. 화학 반응 속도론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온도가 10°C 하강할 때마다 화학 및 생물학적 반응 속도는 약 절반으로 감소한다. 즉, 냉장고는 음식을 '치료'하거나 '소독'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라는 시간의 흐름을 물리적으로 '일시 정지'시키는 것에 가깝다. 이 때문에 이미 부패가 진행된 음식을 냉장고에 넣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2.2 극상한 미생물과 냉장고의 한계
모든 미생물이 냉장 온도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부패균은 4°C 이하에서 활동을 멈추지만, 리스테리아(Listeria monocytogenes)나 여시니아(Yersinia) 같은 '저온성 세균(Psychrophilic bacteria)'은 0~5°C 사이에서도 유유히 번식한다.[3]https://www.cdc.gov/listeria/outbreaks/index.html — 미국 CDC 등에 따르면 리스테리아균은 냉장 온도인 4°C 이하에서도 오염된 음식을 통해 식중독 대형 사고를 자주 일으키는 주범이다. 특히 리스테리아균은 치사율이 높고 치즈나 가공육에서 잘 자라므로, 냉장고를 과신했다가는 식중독에 걸리기 십상이다. 냉장고는 세균의 완전한 방역 지대가 아니다.
2.3 얼음 결정과 냉동 건조 현상
음식을 냉동실에 보관할 때 발생하는 수분의 이동도 흥미로운 요소다. 식품 내부의 수분이 얼면서 세포벽을 파괴하는데, 이로 인해 해동 시 식감이 손상되고 즙(Drip)이 유출된다. 또한 냉동실 내부의 건조한 공기로 인해 식품 표면의 수분이 기화하는 '승화 현상'이 일어나면, 음식이 비틀어지고 색이 변하는 '냉동 상해(Freezer burn)'가 발생한다. 장기 보관된 냉동고의 고기가 퍽퍽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2.4 여냉 효과와 '냉장고 냄새'의 비밀
냉장고 내부의 낮은 온도는 분자의 증발(기화)을 억제한다. 냄새를 유발하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VOC) 역시 온도가 낮으면 공기 중으로 잘 날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악취는, 미생물이 아주 천천히 단백질을 분해하며 생성한 아민 계열 화합물이 밀폐된 공간에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발생한 결과물이다.
2.5 냉장 보관 시 독이 되는 저온 상해
모든 음식이 냉장고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열대 과일이나 일부 채소(바나나, 감자, 토마토 등)를 냉장 보관하면 '저온 상해(Chilling injury)'가 발생한다. 이는 식물 세포막의 유동성이 떨어져 세포가 파괴되고, 이로 인해 피팅(홈 파임), 갈변, 영양소 파괴 등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바나나가 냉장고 안에서 더 빠르게 검게 변하는 이유가 바로 식물 생리학적 저항 반응 때문이다.[4]바나나의 optimal 보관 온도는 약 13°C로, 냉장고 내부(4°C 안팎)에 넣으면 세포막이 파괴되어 멜라닌 색소가 껍질 전체로 급격히 확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