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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화성(Mars)은 태양계의 네 번째 행성이자 지구 바로 외곽을 도는 암석형 행성으로, 특유의 붉은 빛깔 때문에 예로부터 전쟁이나 재앙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류의 가장 강력한 테라포밍 후보지로 주목받고 있다.

화성
화성(Mars)은 태양계의 네 번째 행성이자 지구 바로 외곽을 도는 암석형 행성으로, 특유의 붉은 빛깔 때문에 예로부터 전쟁이나 재앙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류의 가장 강력한 테라포밍 후보지로 주목받고 있다.
Kevin Gill from Los Angeles, CA, United States · CC BY 2.0 · Mars - August 30 2021 - Flickr - Kevin M. Gill.png
화성(Mars)은 태양계의 네 번째 행성이자 지구 바로 외곽을 도는 암석형 행성으로, 특유의 붉은 빛깔 때문에 예로부터 전쟁이나 재앙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류의 가장 강력한 테라포밍 후보지로 주목받고 있다.
1. 태양계의 넷째 행성
1.1 개요
동양권에서는 오행 중 불(火)을 상징한다 하여 화성이라 불렀고, 서양권에서는 로마 신화의 전쟁의 신 마르스(Mars)의 이름을 따왔다.[1]동양에서는 화성이 불을 뜻하는 오행과 연결되어 '화성'이라 불렸고, 서양에서는 특유의 붉은빛이 피를 연상시켜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이름을 얻었다. 붉게 보이는 이유는 표면 토양에 다량 함유된 산화철(녹슨 철) 성분 때문이다.
지구에 비하면 크기가 상당히 작고 황량한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태양계에서 지구와 환경이 가장 유사한 행성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수많은 과학소설(SF)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으며, 현대 우주 과학에서도 외계 생명체 탐사 및 이주 계획의 핵심 대상으로 다루어진다.
1.2 물리적 특성
지름은 약 6,779km로 지구의 절반 정도 크기이며, 질량은 지구의 약 11%에 불과하다. 부피가 작은 만큼 표면 중력도 지구의 38% 수준에 그친다. 즉, 지구에서 몸무게가 100kg인 사람이 화성에 가면 약 38kg으로 느껴지게 된다.
대기는 매우 희박하여 지구의 1% 미만 수준에 불과하며, 대기 성분의 95% 이상이 이산화탄소로 구성되어 있다. 대기가 얇다 보니 온실 효과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평균 기온은 영하 63℃에 달하며, 한겨울 극지방은 영하 140℃까지 떨어질 정도로 극도로 춥다.
지형적 특징으로는 태양계 최대 규모의 거대 화산인 올림푸스 산(높이 약 21km)과 태양계에서 가장 거대한 계곡인 마리너리스 계곡이 존재한다. 또한 과거에 물이 흘렀던 흔적인 나상 채널과 말라붙은 강줄기 자국이 표면 전역에서 관측된다.
1.3 위성
화성은 데이모스(Deimos)와 포보스(Phobos)라는 두 개의 위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이 위성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달처럼 번듯한 구형이 아니라, 크기가 각각 12km, 22km에 불과한 찌그러진 감자 모양을 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 두 위성이 본래 소행성대에 있던 소행성들이 화성의 중력에 잡혀 위성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안쪽을 도는 포보스는 화성의 서서히 서서히 줄어드는 궤도 때문에 먼 미래에 화성 표면에 충돌하거나 중력에 의해 산산조각 날 운명에 처해 있다.
1.4 탐사 역사
인류가 보낸 우주선이 가장 많이 방문한 행성 중 하나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 시기부터 탐사가 시작되었으나, 초기에는 높은 실패율로 인해 '화성의 저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2]초기 화성 탐사 임무의 성공률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여 과학자들 사이에서 '화성의 저주'라는 밈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1965년 미국의 마리너 4호가 최초로 화성 근접 비행에 성공하고 근접 사진을 송신하면서 본격적인 탐사 시대가 열렸다.[3]https://nssdc.gsfc.nasa.gov/nmc/spacecraft/display.action?id=1964-077A — 1965년 7월 마리너 4호가 촬영하여 지구로 송신한 21장의 사진은 인류가 처음으로 목격한 화성 표면의 근접 영상이었다. 이후 바이킹 1, 2호가 화성 표면에 성공적으로 착륙하여 유기물 탐사를 실시했다.
21세기 들어서는 로버(이동형 탐사선)를 통한 탐사가 대세가 되었다. 스피릿, 오퍼튜니티, 큐리오시티, 퍼서비어런스 등 미국의 로버들이 화성 표면을 누비며 과거 화성에 다량의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했음을 명확히 입증했다.[4]https://mars.nasa.gov/mer — 오퍼튜니티 로버는 당초 90일로 예정되었던 미션 수명을 훨씬 넘어 약 15년 동안 화성 표면을 탐사하는 기록을 세웠다. 최근에는 중국 역시 축융 로버를 착륙시키며 화성 탐사 경쟁에 합류했다.
1.5 생명체 존재 가능성 및 테라포밍
현재의 화성은 강한 우주 방사선과 극도로 낮은 기온, 희박한 대기 때문에 생명체가 표면에서 살아가기 극도로 어려운 환경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풍부한 대기와 액체 상태의 바다가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되어, 당시에 번성했던 미생물 형태의 생명체 화석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또한 미래 인류의 거주를 위한 테라포밍(행성 개조)의 최우선 후보지이기도 하다. 극관에 매장된 이산화탄소와 얼음을 녹여 온실 효과를 유발하고 대기압을 높이는 구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스페이스X를 비롯한 민간 우주 기업들도 화성 유인 정착지 건설을 최종 목표로 제시하고 있어, 향후 인류가 지구 외에 최초로 발을 디딜 행성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2. 대한민국 경기도의 기초자치단체
화성시는 대한민국 경기도 서남부에 위치한 기초자치단체(시)로, 수도권 남부의 대표적인 첨단 산업도시이자 급격한 인구 증가를 겪고 있는 대도시이다.
2.1 개요
경기도의 해안가에 위치한 화성시는 동쪽으로는 용인시와 오산시, 남쪽으로는 평택시, 북쪽으로는 안산시와 수원시에 접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서해와 면하고 있다. 과거에는 농업과 어업이 중심이 되던 전형적인 외곽 지역이었으나, 2000년대 이후 동탄신도시 개발과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 하나로 탈바꿈하였다. 넓은 면적과 대기업 제조 시설, 신도시 개발에 힘입어 인구 100만 명을 돌파하며 특례시 지정 요건을 갖추게 되었다.[5]https://www.hscity.go.kr — 화성시는 2023년 12월 100만 인구를 돌파하며 경기도 내 네 번째 특례시 승격 요건을 갖추었다.
2.2 역사
조선 시대에는 남양도호부와 수원목의 일부 지역에 속해 있었으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수원군으로 통합되었다. 1949년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되어 분리되면서 남은 부속 면들이 화성군으로 개칭된 것이 현재 화성시의 직접적인 기원이다. 당시 군청은 수원시에 위치하여 대표적인 얹혀살기 형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2001년 3월 21일을 기해 시로 승격되었으며, 이후 태안읍 일대의 개발과 봉담, 향남, 동탄 등 거대 신도시의 연속적인 조성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2020년대에 이르러 인구 100만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2.3 지리 및 기후
경기도 내에서 5번째로 넓은 면적을 자랑하며, 수원시의 약 5배에 달할 정도로 넓다. 이 때문에 동부와 서부의 지역 격차와 성격 차이가 매우 큰 편이다. 동부는 동탄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고밀도 도시 정주 여건을 갖추고 있는 반면, 서부는 남양읍을 중심으로 농촌, 어촌, industrial park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서해안을 접하고 있어 제부도, 궁평항 등 해양 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기후는 전형적인 중부 지방의 계절풍 기후를 띠며, 해안에 인접해 있어 겨울철 체감 온도가 낮고 안개가 자주 발생하는 특성을 보인다.
2.4 생활권 및 지역 구성
넓은 면적만큼이나 시 내부의 생활권 분절이 심한 편이다. 크게 동탄 중심의 동부권, 남양과 우정, 향남을 위주로 하는 서부권, 봉담과 매송 등이 위치한 북부권으로 나뉜다.
동부권은 동탄1·2신도시로 대표되며, 사실상 수원시나 용인시, 더 나아가 서울 강남권과의 연계성이 높은 전형적인 수도권 신도시의 모습을 띤다. 반면 서부권은 넓은 평야와 공장 지대, 어항이 어우러진 지역으로 행정중심지인 화성시청이 위치해 있다. 이처럼 지역 내 생활권이 판이하게 다르다 보니 주민들 간의 유대감이나 정체성이 다소 희박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2.5 산업 및 경제
대한민국 기초자치단체 중 GRDP(지역내총생산) 최상위권을 다투는 경제 대도시이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비롯하여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 한미약품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 및 제약회사들의 주요 거점이 위치해 있다.[6]https://news.samsung.com/kr —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는 첨단 반도체 라인이 집적된 핵심 거점으로, 화성시 세수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경제적 주축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중소기업과 제조업 공장들이 시 전역에 촘촘히 들어서 있어 세수가 매우 풍부한 편이다. 동탄테크노밸리 등 첨단 산업 인프라도 지속적으로 확충되고 있어 일자리 창출과 인구 유입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농경지와 해안가 역시 존재하여 농업과 수산업의 비중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수준이다.
2.6 교통
경부고속도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평택시흥고속도로 등 수많은 고속도로가 관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철도 교통의 경우 SRT가 정차하는 동탄역이 동부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향후 GTX-A 노선의 개통으로 서울 접근성이 대폭 향상되고 있다. 서부 지역 역시 서해선 복선전철 개통으로 교통 오지라는 악명을 벗어던지는 중이다. 다만 넓은 면적에 비해 시내버스 망의 효율성이 떨어져 자차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며, 동서 간을 잇는 대중교통 연결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3. 조선 시대의 성곽
수원 화성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와 장안구에 걸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읍성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의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그 근처에 있던 수원부의 읍치를 팔달산 수어청 남쪽 기슭으로 옮기고 신도시를 건설한 뒤 이를 둘러싸도록 축조한 성곽이다. 단순히 군사적 목적만을 위해 지어진 성이 아니라, 정조의 정치적 야망인 왕권 강화와 친위 부대 장용영의 거점 확보, 그리고 실학을 바탕으로 한 상업 도시 육성이라는 복합적인 목적을 가진 당대 최고 수준의 계획도시 프로젝트였다.
조선 성곽 건축의 정점이자 꽃으로 평가받는다. 정약용이 발명한 거중기와 유형거 등의 신기술이 적극 활용되었고, 동양의 전통적인 성곽 축조 기법에 서양의 발신식 성곽 기술과 포루 구조가 절묘하게 접합되었다.[7]https://www.swcf.or.kr — 정약용은 거중기를 고안하여 성곽 축조에 필요한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석재와 벽돌을 혼용하여 방어력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성곽과 문루 다수가 파괴되는 비운을 겪었으나, 축성 당시 성곽 공사의 모든 과정을 기록한 공식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가 완벽하게 남아있었던 덕분에 이를 토대로 사실상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다.[8]https://heritage.unesco.or.kr — 화성성역의궤는 건축 자재의 치수부터 동원된 인부의 이름과 임금까지 기록하여 6.25 전쟁으로 훼손된 성곽의 완벽한 원형 복원을 가능하게 했다. 이 기록의 정밀함과 역사적·건축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3.1 개요 및 역사
정조는 비운에 가식되어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조선 최고의 명당으로 손꼽히던 수원 화산으로 옮겼다. 이에 따라 기존 수원의 관아와 민가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새로운 신도시를 조성해야 했다. 정조는 이 신도시를 보호하고 자신의 국정 개혁을 뒷받침할 군사 기지로 삼기 위해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1796년 9월에 화성을 완공했다.
당시 영의정 채제공이 총괄 책임자인 이유겸을 지휘했고, 실학자 정약용이 성곽의 설계와 계획을 맡았다. 정약용은 중국의 '기기설도' 등을 참고하여 무거운 돌을 적은 힘으로 들어 올리는 거중기와 짐수레인 유형거를 제작하여 공사 기간을 단 2년 9개월 만에 끝내는 기적을 일으켰다.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겨울에는 솜옷과 척약신제를 하사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복지 정책이 시행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4대문 중 하나인 창룡문과 봉돈, 수문 등이 파괴되고 성벽이 훼손되는 수난을 겪었다. 그러나 1975년부터 화성성역의궤의 완벽한 철저함에 힘입어 전면적인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고, 현재는 수원의 대표적인 상징이자 국가 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3.2 구조 및 주요 시설
성벽의 전체 길이는 약 5.7km이며, 지형을 그대로 살려 팔달산 정상을 포함한 평산성 형태로 지어졌다. 성곽 내부에는 4대문을 비롯해 암문, 포루, 적대, 공심돈 등 48개의 방어 시설이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다. 동양의 성곽이 주로 높이에 집착한 반면, 화성은 총포의 발달에 대응해 성벽 높이를 낮추는 대신 두께를 두껍게 하고 벽돌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대포의 충격을 흡수하도록 설계되었다.
남문인 팔달문과 북문인 장안문은 화성의 얼굴에 해당한다. 특히 장안문은 국왕이 한양에서 내려올 때 처음 들어서는 정문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한양의 숭례문이나 흥인지문보다도 규모가 크게 지어졌다.[9]한양에서 내려오는 국왕을 맞이하는 정문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수도의 숭례문보다 더 큰 규모로 격식을 갖추어 지어졌다. 성문 밖에는 반달 모양의 옹성을 쌓아 성문을 이중으로 보호했고, 옹성 위에 누각을 두어 적을 위에서 공격할 수 있게 했다.
수원천이 성곽을 관통하는 지점에는 7개의 아치형 석조 수문으로 이루어진 화홍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 인근 언덕 위에는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로 꼽히는 방화수류정이 있다. 방화수류정은 평시에는 휴식과 연회를 즐기는 정자이지만, 유사시에는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는 높은 적대 역할을 겸하는 독특한 복합 구조물이다.
공심돈은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독창적인 방어 시설로, 성벽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내부를 비워둔 3층 구조의 요새다. 군사들이 내부에 들어가 총구와 포구를 통해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조선 시대 성곽 건축의 정수로 꼽힌다. 그 외에 비상시 신호를 보내던 봉돈,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포루와 적대 등이 성곽 전체에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3.3 건축학적 및 역사적 의의
화성은 조선 시대 성곽 건축 기술의 집대성이라 불릴 만하다. 기존의 조선 성곽이 산성과 읍성으로 이원화되어 있었던 것과 달리, 화성은 평시의 행정·상업 기능과 전시의 방어 기능을 하나로 합친 도시 성곽이다. 실학자들의 사상적 기반과 정조의 강력한 의지, 그리고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이 결합하여 탄생한 유산이다.
무엇보다 '화성성역의궤'라는 기록물의 존재가 화성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이 의궤에는 성곽의 설계도면은 물론 사용된 돌과 벽돌의 개수, 인건비 지출 내역, 공사에 투입된 인부들의 이름과 주소, 심지어 사용된 도구의 치수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덕분에 훼손된 성곽을 원형 그대로 완벽하게 재건할 수 있었으며, 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조에게 화성은 단순한 성곽 이상의 의미였다. 자신의 친위 부대인 장용영 외영을 배치하여 한양의 노론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정치적 거점이었으며, 삼남 지방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인구와 물화가 모여드는 자급자족형 만석지기를 꿈꾼 개혁 도시의 실체였다.
3.4 관련 유적 및 현재
성곽 내부 팔달산 기슭에는 정조가 행차했을 때 머물던 국왕의 임시 궁궐인 화성행궁이 위치해 있다. 화성행궁은 576칸에 달하는 국내 행궁 중 최대 규모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10]https://www.swcf.or.kr — 정조는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개최하여 화려한 궁중 연회를 선보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병원과 학교 등으로 쓰이며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이 역시 의궤를 바탕으로 복원되어 개방되어 있다.
오늘날 수원 화성은 과거의 유물에 그치지 않고 수원시의 중심부에서 시민들의 생활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성곽 내부와 외부를 잇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성벽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수원의 대표적인 관광 코스이다. 야간에는 성곽 전체에 조명이 켜져 수려한 야경을 자랑한다.
매년 가을에는 정조의 능행차를 재현하는 '수원화성문화제'가 열리며, 서울 창덕궁에서부터 수원 화성을 거쳐 현륭원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융복합 행사가 개최되어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4. 음악의 화음 구성 법칙
화성(Harmony, 和聲)이란 높이가 다른 둘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릴 때 발생하는 음향적 현상 및 그 화음들이 시간에 따라 진행하는 일련의 법칙과 이론을 의미한다.
단순히 음을 동시 발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양 음악사 전반에 걸쳐 체계화된 음들 간의 수직적 조합과 수평적 흐름의 관계성을 연구하는 음악이론의 핵심 분야이다. 흔히 멜로디(선율)가 음악의 수평적 요소라면, 화성은 수직적 기둥이자 공간감을 형성하는 요소로 비유된다. 서양 전통 조성 음악의 기틀이자 현행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곡의 분위기와 구조를 결정짓는 근간 역할을 하고 있다.
4.1 화성의 기본 구성 요소
화성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는 화음(Chord)이다. 두 개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리는 상태를 의미하며, 서양 화성학에서는 주로 3도 간격으로 음을 쌓아 올리는 삼화음(Triad)을 기본 틀로 삼는다.
으뜸음 위에 3도와 5도 음을 올려 만드는 삼화음은 성질에 따라 단조와 장조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장삼화음, 단삼화음, 감삼화음, 증삼화음 등으로 나뉜다. 여기에 3도 음을 하나 더 쌓으면 칠화음(7th Chord)이 되며, 더욱 복잡하고 다채로운 색채를 띤다.
이러한 화음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보다 전후 맥락 속에서 움직일 때 비로소 화성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한다. 화음의 뿌리가 되는 근음(Root)의 위치와 배치 방식에 따라 화음의 안정성과 긴장감이 크게 달라진다.
4.2 화성의 역사적 발전 과정
초기 서양 음악은 하나의 선율로 이루어진 단성 음악(Monophony)이었으나, 중세 시대를 거치며 여러 선율이 동시에 진행하는 다성 음악(Polyphony)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는 화음이라는 개념보다는 독립적인 선율들이 겹쳐지며 우연히 발생하는 음의 어울림에 주목하였다.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 바조 콘티누오(지속베이스)가 발달한 바르크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수직적인 화음에 대한 인식과 조성(Tonality)의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하였다. 장-필립 라모가 저술한 '화성론'을 통해 현대적 화성학의 기초가 마련되었으며, 기능화성학의 틀이 본격적으로 구축되었다.[11]https://gallica.bnf.fr — 라모는 1722년 발간한 '화성론'에서 삼화음의 전위 개념과 근음의 움직임을 이론화하여 근대 기능화성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고전파와 Romanticism 시대를 거치며 화성은 더욱 풍성해졌고, 19세기 말에 이르러 반음계적 화성법과 비기능적 화성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통적인 조성이 해체되는 무조음악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전통적인 화성 체계는 여전히 현대 음악과 대중음악 전반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4.3 기능화성학의 원리
서양 조년대 체계의 핵심은 화음이 저마다 독자적인 역할과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 있다. 이를 기능화성학이라 칭하며, 크게 으뜸화음(Tonic), 딸림화음(Dominant), 버금딸림화음(Subdominant)의 세 가지 핵심 기능으로 구획된다.
으뜸화음은 조성의 중심이자 가장 완벽한 안정감을 주는 화음이다. 딸림화음은 으뜸화음으로 돌아가려는 강한 이끌림과 긴장감을 유발하는 화음이며, 버금딸림화음은 으뜸화음과 딸림화음 사이를 연결하거나 이완과 긴장의 중간 지대를 형성한다.
음악은 이처럼 이완, 중간 단계, 긴장, 다시 이완으로 이어지는 화성의 순환과 흐름을 통해 진행된다. 화성학에서는 이러한 화음 간의 연결 법칙을 다루며, 각 화음의 진행 방향과 금지되는 규칙(예: 평행 8도, 평행 5도 금지 등)을 상세히 규정한다.
4.4 대위법과의 관계 및 현대적 수용
화성과 자주 비교되는 음악적 개념으로 대위법(Counterpoint)이 있다. 화성학이 음의 수직적 결합과 화음의 진행에 초점을 맞춘다면, 대위법은 각 선율의 수평적 독립성과 조화를 다룬다. 그러나 실제 음악에서는 수직적 화성과 수평적 선율이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완성도 높은 음악일수록 화성학적 타당성과 대위법적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한다.
현대의 음악 작업 및 화성 이론은 전통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한층 다변화되었다. 재즈 화성학은 기존 화성 법칙을 확장하여 복잡한 텐션 음들과 자유로운 대입 화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대중음악 역시 고전적 화성학의 엄격한 규율을 완화하는 대신, 감각적인 루프(Loop) 형태의 화성 진행과 색채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진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5. 여담
5.1 '화성(華城)'과의 이름 유사성으로 인한 밈(Meme)
대한민국 경기도 화성시(華城) 및 수원 화성(華城)과 한글 이름이 완벽히 일치하여 발생하는 언어유희성 밈이 존재한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화성 탐사선 발사나 화성 생명체 관련 기사에 "경기도 화성시 이야기냐"라는 식의 언어유희성 댓글이 어김없이 달린다. 특히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한창 주목받던 시기나 화성시의 부동산 관련 뉴스에서 이러한 언어유희가 자주 활용되었다. 참고로 한자 표기 역시 행성 화성은 불 화(火) 자를 쓰는 '火星'이므로 한자 뜻풀이부터 완전히 다르다. 음악 이론의 '화성(Harmonics, 和聲)'과도 이름이 같아 개그 소재로 소비되기도 한다.
5.2 테라포밍의 핵심, '올림포스 산'의 압도적 위용
화성에는 태양계 최대 규모의 거대 신생 화산인 '올림포스 산(Olympus Mons)'이 존재한다. 높이만 약 21~25km에 달해 에베레스트 산의 3배에 육박하며, 산의 기저부 면적은 한반도 전체 크기와 맞먹는 수준이다.[12]https://mars.nasa.gov/gallery/atlas/olympus-mons.html — 올림포스 산의 기저부 면적은 약 30만 ㎢에 달하여 한반도 전체 면적(약 22만 ㎢)을 덮고도 남는 크기다. 경사가 매우 완만하여 산 정상에 서면 정작 지평선의 곡률 때문에 자신이 산 위에 있는지조차 인지하기 어렵다. 향후 화성 테라포밍이나 인류 정착지 건설 시 대기권 밖으로 거의 솟아 있는 이 정상 부위가 우주 엘리베이터나 로켓 발사 기지의 최적 후보지로 거론된다.
5.3 붉은 행성의 역설, '파란색 일몰'
지구에서는 낮에 하늘이 파랗고 해 질 녘에 붉은색 노을이 지는 것과 정확히 반대로, 화성에서는 낮 하늘이 분홍빛 내지 갈색을 띠고 일몰 시에는 푸른색 노을이 진다.[13]대기가 얇고 미세한 산화철 먼지가 빛을 산란시키는 방식이 지구와 달라, 낮에는 분홍빛 하늘이 펼쳐지고 해 질 녘에는 푸른 노을이 관측된다. 이는 화성의 옅은 대기층과 미세한 산화철 먼지 입자가 빛을 산란시키는 방식이 지구와 다르기 때문이다. 화성의 미세먼지는 파장이 긴 붉은빛을 산란시키고 파장이 짧은 푸른빛을 직진시키는 경향이 있어, 태양 주변으로 푸르스름한 광화(光華)가 비치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5.4 시한부 위성 '포보스'의 운명
화성의 제1위성인 포보스(Phobos)는 화성 표면에 너무 바짝 붙어 돌고 있어 조석력에 의해 매년 약 1.8cm씩 화성으로 끌려가고 있다. 약 3,000만~5,000만 년 후에는 로슈 한계(Roche limit)를 넘어서며 화성의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 날 예정이다.[14]https://www.nature.com/articles/ngeo2583 — 포보스는 서서히 화성에 접근하고 있으며, 약 2,000만~4,000만 년 후 로슈 한계 안으로 진입해 파쇄된 뒤 화성 주변에 띠를 형성할 것으로 예측된다. 파괴된 포보스의 파편들은 화성의 주위에 띠를 형성하여, 먼 미래의 화성은 토성처럼 아름다운 '위성 고리'를 가진 행성으로 변모할 것으로 예측된다.
5.5 지구산(産) 미생물에 의한 생태계 오염 우려
인류가 보낸 탐사선(큐리오시티, 퍼서비어런스 등)이 화성에 도착하면서, 지구의 극한 환경 미생물이 탐사선에 붙어 함께 건너갔을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나사(NASA)는 격리실에서 엄격한 소독 과정을 거치지만 100% 사멸은 불가능하다. 만약 화성에서 외계 생명체가 발견된다면, 그것이 실제로 화성 자생 생명체인지 아니면 과거 지구 탐사선에 실려 온 지구 미생물의 후손인지 가려내는 것이 향후 화성 생물학의 최대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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